[사설] 김정일 사망, 한반도 안정 해쳐선 안 된다
입력 2011-12-19 21:23
북한 최고 지도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다. 1974년 32세의 나이에 아버지 김일성의 공식 후계자로 내정된 이후 대를 이어 북한을 철권통치해 온 지 37년 만이다. 이로써 북한과 한반도 정세는 기로에 섰다. 혼란과 안정, 충돌과 평화의 갈림길이다.
김정일의 사망은 당연히 격랑을 몰고 오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반도의 안정이다. 행여 그의 사망으로 추호라도 한반도의 안정에 금이 가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 혹시 있을지 모를 대남 무력 도발을 억제할 수 있도록 공고한 국방태세를 확립하는 등 철저히 대비하는 것은 물론 추가 핵실험 등 북한이 경거망동하지 못하도록 미·중·일·러 등 주변 4강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긴밀한 공조도 요구된다.
김정일은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건강상태가 많이 나빠졌다 해도 적어도 몇 년은 더 살 것으로 예상돼 왔다. 그의 사망은 비록 전혀 예상 못한 건 아니라 해도 급작스럽다. 외부적인 충격도 크지만 북한 내부의 혼란도 극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김정일이 1994년 김일성 사망 후 권력을 순탄하게 이어받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했다가 틀린 데 따른 교훈 탓인지 대체로 3남 김정은의 권력 승계가 무난할 것으로 예상한다. 3대 세습 후계체제의 틀이 이미 갖춰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1994년 김일성 사망 때와는 사정이 다르다.
당시 김정일은 52세로서 김일성과 공동 혹은 단독으로 이미 20년의 국정운영 경험을 갖고 있었고 나름대로 권력기반도 다져놓은 상태였다. 반면 올해 28세의 김정은은 2009년에야 후계자로 내정됐고 지난해 비로소 당 대표자회에서 공식 후계자로 전면에 내세워지는 등 왕년의 김정일에 비해 연륜과 경력이 크게 부족하다. 아직 불안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북한에서는 김정은이 권력을 확고하게 구축하지 못한 틈을 타 군부 쿠데타와 ‘궁정 쿠데타’를 포함해 격렬한 권력투쟁이 발생할 수 있다. 이 경우 내부 혼란을 잠재우고 주민의 관심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북한이 대남도발을 강행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천안함·연평도 사태로 인해 남측과 미국이 원점 타격 등 강력한 대응을 천명해놓고 있는 마당에 그래서는 북한 체제의 몰락만 가속화할 뿐이다. 당장 한반도에 필요한 것은 북한의 안정을 통한 전체적인 안정이지 북한의 급속한 붕괴가 아니다. 그것은 자칫하면 큰 재앙이 될 수 있다.
그런 만큼 김정일 사후 새로 정권을 잡는 세력은 우선 내부 안정화에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아울러 차제에 개혁과 개방, 그리고 주민 인권 개선을 통해 면모 일신을 도모하기를 바란다.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얘기다.
김정일이 남긴 부(負)의 유산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최악은 혹심한 경제난과 선군정치다. 폐쇄와 고립, 그리고 시대에 뒤떨어진 계획경제로 인한 경제난은 이미 국가경제를 거덜냈다. 이대로 계속 간다면 회생의 여지는 없다. 거기에 체제 유지를 위해 오로지 군과 무기산업에만 치중한 선군정치는 거의 전 인민의 영양실조를 초래하는 등 주민 생활을 극도로 피폐하게 만들었다.
김정일의 사망을 전기(轉機) 삼아 북한은 이런 나락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아울러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고 주민 인권상황 개선에 나서야 한다. 그럴 경우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앞 다퉈 지원의 손길을 뻗을 것이다.
北 새 정권, 대남도발 포기해야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김정일 사망이라는 ‘위기상황’을 맞은 북한을 붕괴의 전 단계로 간주해 압박을 가하거나 ‘대결적’ 자극을 해서는 안 되며 대화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옳은 지적이다. 현재로서 중요한 건 북한의 안정이다. 남측이 앞장서 북한의 안정을 저해해서는 곤란하며 대화 국면을 조성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 주장처럼 국가 차원의 조문사절단을 보낸다거나 전군 비상경계태세를 발령하지 않아야 한다거나 천안함·연평도사태를 그냥 덮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 우리 장병 수십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민간인들에게 포격을 가한 집단의 우두머리가 사망했다고 해서 그것을 없었던 일로 하고 조문사절단을 보낼 수는 없다. 또 김일성 사망 때 정부의 전군 비상경계태세 발동을 북한이 문제 삼았다고 해서 이번에는 하지 말자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북한의 대남 군사도발 가능성이 상존하는 한 우리 군이 비상경계태세를 취하는 것은 당연하다.
김정일 사망이라는 비상 상황을 맞아 한반도 안정이 깨지지 않도록, 우리 사회에서 불안이 확산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