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진홍] 한때 ‘통 큰’ 행보로 주목받았던 김정일
입력 2011-12-19 17:48
2000년 6월 13일 오전 10시25분, 분단 55년 만에 이뤄진 1차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서울발 평양행 특별기가 순안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기자는 북측이 마련해준 차량을 타고 김대중 대통령 일행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으로 향했다. 김 대통령 일행이 여장을 푸는 장면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백화원 내 휴게실에서 차 한 잔 마시던 중 김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곧 도착한다는 북측 안내원의 전언을 듣고 로비가 보이는 영빈관 복도로 나갔다. 김 위원장도 온다는 의외의 말에 다소 긴장한 채 차량이 멈춰 설 로비까지 가려 했으나 북측 요원들은 20m쯤 전에서 제지했다. 북측 요원들 어깨 너머로 검은 색 링컨컨티넨털이 보였고, 차량 문이 열리는 순간 ‘김 위원장이 내리겠구나’라고 생각했으나 빗나갔다. 김 대통령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반대편 문을 통해 김 위원장이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두 정상이 한 차량에 동승했던 것이었다.
파격 연속이었던 2000년 회담
근거리에서 본 김 위원장 목소리는 우렁찼고, 태도는 당당했다. 파도치는 바다 그림을 배경으로 김 대통령, 그리고 김 대통령 내외와의 기념촬영이 끝나자 “장관들도 같이 합시다”며 공식 수행원들과도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예상을 깨고 1차 정상회담까지 이어졌다. 김 위원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마주 앉은 공식 수행원들을 향해 “환영합니다”라고 말하곤 임동원 대통령특보에게 큰 소리로 수행원들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임 특보는 한 명씩 소개했고, 소개받은 공식수행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깍듯이 인사했다. 김 위원장은 자리에 앉아 고개만 가볍게 끄덕이며 수행원들의 인사를 받았다.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김 위원장은 김 대통령에게 “섭섭지 않게 해 드릴 테니 염려하지 마십시오”라고 했다. 회담을 마치고 돌아가면서는 안주섭 청와대 경호실장에게 “걱정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백화원 영빈관에서의 1차 정상회담은 이렇게 전 세계로 타전됐다.
공항 영접, 차량 정상회담, 기념촬영, 1차 정상회담까지 김 위원장은 첫날 파격 행보로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김 위원장이 은둔 생활을 마감했다’는 외신보도가 나오자 김 위원장은 다음날 김 대통령과 만나 “김 대통령이 오셔서 은둔에서 해방됐다”며 호쾌하게 웃었다. 국내에서는 김 위원장 서적이 많이 팔려나가는 등 ‘김정일 바로알기’ 신드롬까지 나타났다. 그러나 김정일에 대한 호평은 오래 가지 못했다. 정상회담 대가로 수억 달러를 챙긴 사실이 알려지고, 그 돈으로 ‘핵도박’을 벌이며 철권통치를 해온 탓이다.
호탕함도 사라졌다.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 때의 김정일은 몹시 수척했다. 말수도 적었다. 이듬해엔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그래서인지 2009년 셋째 아들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정한 데 이어 2010년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선임하는 등 후계체제 구축을 서둘렀다. 유례없는 3대 세습이 그의 마지막 목표였던 것이다.
근심 속에 눈 감았을 듯
김정일이 김일성 후계자로 실권을 거머쥐었던 때는 1985년이다. 그의 나이 43세. 권력의지가 강했던 것을 방증한다. 하지만 김정은은 현재 28세다. 북한 체제 특성상 지도자 나이는 문제가 안 될 수 있다. 하지만 언젠가 김정일이 김정은을 걱정스런 눈길로 바라보는 사진이 공개된 적이 있다. 마치 ‘저 어린 것이 잘 통치할 수 있을까’라는 듯이. 김정일 사후 북한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도 비슷하다. ‘아랍의 봄’이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때여서 더욱 그렇다. 예측 불가능한 행동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김정일은 근심 속에 눈을 감았을 것 같다.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