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마지막 말씀

입력 2011-12-19 17:53


요한계시록 22장 20∼21절

‘마지막’의 또 다른 이름은 ‘시작’입니다. 우리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이며 이 땅의 마지막은 하나님 나라의 시작입니다. 처음과 나중, 시작과 끝, 창조와 심판, 알파와 오메가…. 이렇게 말씀하실수 있는 유일한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을 펼치면 하나님의 선언이 시작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창 1:1) 모든 피조물을 완벽하게 만드시고 인간을 에덴동산에 두셨으나 탐욕으로 인해 죽음을 맛보게 됐습니다. 요즘 인기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은 한글을 만들어 모든 백성들에게 글을 가르침으로 소통하려 하지만 반대세력들은 다름 아닌 기득권층이었습니다. 사대부들은 글이 힘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글 나눔은 권력 나눔이라는 공식을 만들어 생명을 걸고 막아내려 했습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되는 진리를 몰랐던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구약의 끝인 말라기 4장 6절은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신약성경의 마지막 말씀인 오늘 본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예수님은 속히 오시겠다며 재림을 선포하셨습니다. ‘속히 오리라’는 말씀은 미래형이 아니 현재형입니다. 미래에 오신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오고 계시는 중이라는 것입니다. 어디쯤 오셨는지 알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24장 48절에 “악한 종은 주인이 더디 오리라”고 합니다. 베드로후서 3장 3∼4절에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주의 강림하신다는 말씀이 어디 있느냐”고 되묻습니다. 주님이 오시면 천국과 지옥이 갈라집니다. 행복과 불행, 생명과 죽음이 나뉩니다. 주님은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실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순교를 각오하고 살았습니다. 신랑을 준비하는 신부의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신부가 갖추어야 할 덕목은 순결, 순종, 순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순종을 원하십니다. 계산하면 순종하지 못합니다. ‘증인’과 ‘순교’란 단어의 어원은 같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최후 말씀을 새겨들어야 합니다.

“아멘 주 예수의 어서 오시옵소서(마라나타).” 마라나타는 초대교회 인사였습니다. 누가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을까요? 천국의 가치를 본 사람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이 땅에서 고난을 당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 손양원 목사님은 감옥에서 ‘주님 고대가’를 불렀습니다. 김활란 박사는 “나를 죽은 자처럼 장송곡을 부르지 말고 승리의 찬송을 불러다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얼마 전 타계한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포스코가 세계 최고가 되길 바란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무엇을 남기겠습니까? 우리 모두 다시 오실 예수님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순결한 신부가 됩시다. ‘아멘 주 예수여 오서 오시옵소서’라는 마라나타의 성도가 됩시다. 하나님의 모든 은혜가 여러분을 통해 온 이웃에게 흘러가도록 거룩한 통로가 되십니다.

박종안 목사 군포 푸른초장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