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철휘 (17) “아폴로 눈병을 막아라”… 해법은 매뉴얼 대처

입력 2011-12-19 17:52


제3하사관학교에 근무하면서 잊지 못할 일이 하나 있었다. 그때 학교장님은 매우 성실한 분이었다. 일요일 저녁에는 직접 손전등을 들고 하사관(지금의 부사관) 후보생들의 내무반(지금의 생활관)을 한 곳도 빠짐없이 돌며 꼼꼼히 순찰할 정도였다. 유리창은 잘 닫혔는지, 청소는 잘 되었는지 부대 곳곳을 직접 점검하셨다. 처음에는 학교장이 매주 정기적으로 순찰을 하니까 그 시간에 맞춰 일부러 일하는 척하는 사람도 있곤 했는데, 그런 모습이 보이기라도 하면 얼마나 혼이 났는지 모른다. 그래서 학교장님이 순찰오시는 시간이 되면 일부러라도 퇴근을 해야 했다. 그 정도로 철저한 분이었다.

그런데 한번은 학교 전체에 아폴로 눈병이 크게 돌았다. 지금은 위생 여건도 양호하고 약도 좋아져 그렇게 심하게 번지지 않지만 그때만 해도 아폴로 눈병이 한번 돌았다 하면 걷잡을 수 없이 확 퍼졌다. 교육이 1주일씩 연기될 정도로 엄청난 지장을 초래했다. 때문에 어떻게 하면 아폴로 눈병을 초기에 차단하느냐가 큰 과제였다. 그만큼 골치 아픈 문제였다.

하루는 학교장님이 순찰을 하면서 우리 중대에 오셨는데, 20여명의 병력이 별도 내무반에서 자고 있는 것을 보셨다. 의아하게 생각하신 학교장님이 이유를 물어보셨다. 당직사관으로 근무하던 중위가 보고했다. “지금 저희 중대에 눈병이 돌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대장이 눈병 환자들은 수건도 따로 쓰게 하고, 잠자는 곳도 별도로 격리하도록 지시하여 그대로 조치한 것입니다.” 그런데 학교장님이 16개 중대를 다 돌아보아도 그렇게 하는 부대는 우리 중대 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다음날 전 후보생 가운데 눈병 환자를 파악해 보니 그 수가 어마어마했다. 그런데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은 나머지 중대장들은 전부 크게 혼쭐이 났다. 한편으로 나는 다른 중대장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사실은 눈병이 유행하면 본디 그렇게 하도록 되어 있는데, 학교장님에게는 두드러지게 강한 인상을 남긴 것 같았다. 또 하나는 중대장을 시작한지 7∼8개월 지났을 무렵 이번엔 내가 보안사령부 요원으로 추천되어 면담을 가게 되었다. 그때는 이미 대위에서 소령으로 진급 심사가 해당되는 해여서 나는 현재의 부대에서 계속 근무하기를 원했다. 그런데 그것을 아신 학교장님이 야전에서 군 생활을 하려는 훌륭한 장교로 칭찬해 주셨다. 이 두 사건을 계기로 학교장님이 나를 재구상(고 강재구 소령을 기리기 위한 상) 후보로 추천을 해 주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도 아폴로 눈병 사건을 잊지 않고 무슨 일을 할 때 적당히 하려 하지 않는다. “네 입으로 말한 것은 그대로 실행하도록 유의하라. 무릇…네가 입으로 언약한 대로 행할지니라”(신 23:23) 성경에서도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나는 내가 한 말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약속을 지키려 노력한다. 그럴 때에 다른 사람들도 나를 신뢰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아폴로 눈병 사건은 군 생활을 하면서 기본과 원칙을 지키고 정상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 주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때 보통 다른 사람이 보는지 안 보는지를 의식하게 되지만 사실은 어떤 경우라도 충직하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하나님이 언제, 어디서나 보고 계신다고 생각하면 적당히 해서 될 일은 아무것도 없다.

정리=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