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수의 영혼의 약국 (119)
입력 2011-12-19 09:47
별과 왕의 탄생
‘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게 있습니다. 조선 후기인 1861년 남병길이라는 이가 작성한 천문서죠. 1449개의 별이 일으키는 세차 운동을 당시에 맞게 그려 놓은, 우리나라 최초의 별 목록 그림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청원의 아득이 고인들 군락에 가면 돌판에 큰곰자리, 작은곰자리, 용자리, 카시오페아자리 같은 별 그림이 새겨져 있습니다.
왜 뚱딴지 같이 구석기시대 돌무덤에 새겨진 별자리 이야기며, 듣도 보도 못한 천문서 이야기를 꺼내는 걸까요? 동방박사 이야기를 하려는 것입니다. 어떤 예수 믿는 이들은 동방박사를 점성술사 또는 무당쯤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고대세계에 있어서 하늘에 대한 지식은 일상생활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계절의 변화에 맞추어 언제 작물을 수확하고 가축을 이동할 것인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일식이나 행성의 변화에 따른 강의 범람과 가뭄도 천문을 읽어야 알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하늘에 대한 지식은 고대인에게 있어서 필수적이었습니다. 어디 고대에만 그럴까요? 오늘날에도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갈 때나, 작물을 파종하고 출하할 때 일기예보를 살피지 않습니까?
이토록 하늘에 대한 지식은 인간의 운명을 좌우했고, 그것을 다루는 이들은 대부분 지배계층이었습니다. 당시 바벨론은 점성술이 성행한 반면 유대는 그것을 금했습니다. 이것은 현자와 제사장의 차이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성서에는 유대인이 금하던 점성술을 예수의 탄생 시점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별과 왕의 탄생’을 연결하는 의식은 전혀 유대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지극히 로마적인 사고인 것입니다.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으로 간 것은 ‘아기 예수를 경배하러’ 간 게 아니고, 그들(로마)의 인식대로 새 왕의 탄생을 보려고 간 것입니다. 로마 사람들은 왕이 되려면 신성, 왕권, 정의라고 하는 삼중합이 있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 삼중합은 천문에서 화성, 목성, 토성이 만나는 날인데, 그들의 예측에는 바로 그 때, 예수님이 탄생하던 그 때 예루살렘에서 화성, 목성, 토성이 만나는 것을 관측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바벨론의 천문학자들은 그걸 알고 베들레헴으로 갔던 것입니다.
춘천 성암감리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