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벳 혁명’ 이끈 민주화 영웅 하벨 전 체코 대통령 별세

입력 2011-12-19 01:15

반체제 극작가 출신으로 냉전을 종식시킨 주요 공로자로 평가받는 바츨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5세.

그의 비서인 사비나 단체코바는 성명을 통해 하벨 전 대통령이 이날 오전 체코 북부에 있는 주말용 별장에서 타계했다고 전했다.

체코 국영 TV는 하벨이 오랜 지병으로 말미암은 합병증으로 숨졌다고 보도했다. 하벨은 지난 1996년 폐암 수술을 받았으며 순환기 관련 질병으로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극작가 출신의 하벨은 1989년 체코슬로바키아를 소련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한 ‘벨벳 혁명’을 이끈 영웅으로 첫 민선 대통령이 됐다.

하벨은 1989~1993년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을 지냈으며 1993년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된 이후 2003년까지 체코 대통령으로 일했다. 하벨은 동유럽에서 공산주의가 몰락하고 민주주의로 이행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성긴 콧수염과 제대로 빗지 않은 머리로 대표되는 하벨의 모습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공산주의 압제를 이겨낸 ‘피플 파워’의 상징이 됐다.

1936년 프라하에서 영화 스튜디오와 많은 토지를 소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하벨은 1948년 이후 공산주의자들이 집권하면서 ‘부르주아 자본가’로 낙인찍혀 험난한 경로를 걸었다. 정규 교육도 제대로 받을 수 없었던 그는 고등학교도 야간 과정으로 마쳤다. 이후 극장의 조명보조원, 무대담당원 등을 거쳐 극작가 겸 감독이 됐다. 공산주의 치하에서 여러 직업을 전전해야 했던 경험들이 그의 작품의 주요 소재가 됐다.

하벨은 1977년 서방에서 큰 주목을 받은 인권 선언문인 77조 헌장을 공동 집필하면서 정치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가 즐겨 말했던 ‘진리와 사랑이 결국 거짓과 증오를 이긴다’란 구절은 벨벳 혁명 당시 공산주의 반대 시위에 나선 시민들의 구호가 됐다. 하벨은 몇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천되기도 했다. 다르푸르 학살과 미얀마 군사독재정부의 압제 고발 등 전 세계를 무대로 인권 옹호에 나선 공로로 미국 ‘자유의 메달’ 등 여러 상을 받았다.

배병우 기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