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세 줄줄 새는 정책연구용역] 허술한 평가시스템… 문제 드러나도 비판 없이 칭찬만
입력 2011-12-18 21:25
(1) 예산 쏟아 붓고 부실 보고서 양산
정부 정책연구용역보고서에 대한 평가결과서에서 비판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문제가 드러난 보고서의 평가결과서도 낯 뜨거운 칭찬으로 가득했다. 허술한 평가 시스템 운영이 연구 없는 정책 용역을 양산하는 주범 중 하나로 지목됐다.
각 부처는 과장급 이상 과제담당관이 외부 전문가 1명을 평가전문위원으로 위촉해 연구 결과를 평가하고 평과결과서를 작성해 보고한다. 과제담당관은 평가 결과가 불량한 연구자에게는 향후 3년 내 연구자 선정 시 불이익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취재 결과 불이익을 받을 만큼 혹독한 비판을 제기한 평가결과서는 없었다. 해외연수 프로그램의 수고비 대가로 제출한 문제 보고서인 ‘선진 해외연수 매뉴얼’조차 ‘용역 추진 방법이 적절했고 연구 결과 활용 가능성도 높다’고 평가됐다.
교수들이 상대방의 용역보고서를 서로 평가하는 사례도 발견됐다. 정부 관계자는 “A교수가 B교수의 용역보고서를 평가하고, B교수가 A교수의 보고서를 평가해도 규정을 어긴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용역보고서를 서로 평가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이 많다.
관동대 K교수는 백석대 M교수가 공동연구자로 참여한 ‘부과고지 제도 신규 도입에 따른 보험료 적정 징수를 위한 인별 관리방안’(4000만원)을 평가했고, M교수는 K교수가 책임연구자로 나선 ‘가족종사자 산재보험 적용 타당성 및 적용방안 검토’(4000만원) 보고서를 평가했다.
두 교수는 상대방의 용역보고서에 대해 ‘독창성이 있으며 노동부(현 고용노동부) 업무 추진에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판단된다’ ‘제도 개선을 위한 정책연구 용역의 목적에 부합하고 연구 결과의 활용 가능성이 높다’는 우호적 평가를 교환했다. K교수는 “평가할 때 누가 썼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평가자가 용역보고서 집필자를 다 확인할 수 있다”면서 “특정 분야의 연구인력 풀이 한정돼 이런 일이 빚어진다”고 해명했다.
규정을 어기고 외부 전문가 없이 평가결과서가 제출된 경우도 있었다. 특별취재팀이 고용노동부 발주 ‘국가기술자격 검정업무 수탁기관 적정성 조사 평가 연구’(3300만원) 사업 평가결과서에 이름이 올라간 C교수에게 확인한 결과 “용역보고서를 평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외부 평가자 없이 평가가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C교수 이름을 올린 것은 실무자의 실수였다”고 해명했다. 같은 기관에서 근무하는 동료나 선후배가 평가에 참여한 사례도 많았다. 가재는 게 편이라는 속담처럼 칭찬으로 가득 찼다. 한 교수의 용역보고서를 같은 학과 교수가 평가하기도 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과제담당관들은 전문적 소양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평가 자체를 외부 전문가에게 미루는 경우가 많았다고 밝혔다. 지식경제부 과제담당관은 “정책용역 연구가 전문적인 내용이 많아 평가는 전문가에게 다 맡겼다”며 “부실 상태가 이 정도일 줄 몰랐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하윤해 천지우 이도경 이선희 최승욱 진삼열 김미나 사회부 기자, 전웅빈 경제부 기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