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연구용역 보고서 10건중 1건 ‘엉터리’, 베끼기·짜깁기·부실관리…혈세 ‘펑펑’

입력 2011-12-18 22:05

국민일보, 1112건 전수조사

매년 수백억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되는 정부 정책연구용역사업이 부실하게 운영되고 있다.

정부의 허술한 관리·감독과 일부 연구진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로 막대한 혈세가 새나가고 있다. 베끼기, 짜깁기 등을 동원한 ‘연구 없는 정책연구’로는 국민에게 필요한 정책의 개발을 기대할 수 없다.

정책연구용역사업은 정부 정책의 개발, 주요 정책 현안에 대한 조사·연구 등을 목적으로 실시된다. 정부는 경쟁입찰 및 수의계약으로 연구자를 선정, 정책연구를 추진하며 대가로 연구용역비를 지급한다.

국민일보 특별취재팀은 올해 1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 ‘정부정책연구 종합관리시스템’(프리즘)에 공개된 연구용역 보고서 1513건 중 비공개 401건을 제외한 1112건을 지난 8월부터 4개월 동안 전수 조사했다. 분석 대상 1112건에 투입된 연구용역비는 529억4561만원으로 집계됐다. 특별취재팀은 또 연구용역사업과 관련된 정부 관계자, 교수·연구진, 학술·시민단체 관계자, 변호사 등 모두 160여명을 직접 만나거나 전화 취재했다.

취재 결과 베끼기, 짜깁기, 자기표절 등 연구 없는 정책연구 용역보고서에 수천만원이 지급된 사례들이 드러났다. 특임장관실이 미국 연수프로그램을 도와준 국가경영전략연구원(NSI)에 연수 기획 및 진행 비용을 지급할 예산이 부족해 1900만원의 연구용역으로 대신한 사실도 확인됐다.

최소 5편의 용역보고서는 기존 논문과 보고서 등을 일부 문맥만 살짝 바꾼 채 사실상 100% 베낀 것으로 조사됐다. 80% 이상을 짜깁기한 용역보고서는 최소 25건으로 집계됐다. 전체 분량의 50% 이상을 표절했거나 연구주제 선정·평가 등에서 정책연구 용역사업 취지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보고서는 최소 95건으로 확인됐다.

중복을 제외하면 최소 116건의 보고서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분석대상 1112건의 10.4%에 달한다. 문제 보고서에 들어간 혈세는 45억1967만원으로 집계됐다.

연구진의 모럴해저드를 부추긴 것은 부실한 관리 시스템이었다. 연구주제 및 연구자 선정, 연구 진행상황 점검, 평가, 정책반영 여부 등 전 과정에서 허술한 점이 발견됐다.

집행 예산에 대한 관리감독도 부실했다. 프리즘에 따르면 2010년 연구용역사업에 들어간 예산은 1700억2590만원이다. 그러나 프리즘을 관리하는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이 비용이 어떻게 산출됐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문제 연구를 진행한 교수·연구원들은 “경솔했다” “돈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연구진은 “90% 이상을 베꼈어도 한 문장이 수천만원의 가치가 있을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이번 조사는 2010년 발주된 용역보고서를 대상으로 했으며 그 이전에 발주된 일부 용역보고서도 포함됐다. 그러나 올해 발주된 보고서는 연구가 마무리된 것이 많지 않아 분석에서 제외시켰다.

특별취재팀=하윤해 천지우 이도경 이선희 최승욱 진삼열 김미나 사회부 기자, 전웅빈 경제부 기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