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클래식, 인기 GO∼ GO∼ 대중을 사로잡다

입력 2011-12-18 17:48


올 한 해 공연계를 정리할 키워드는 무엇일까. ‘해외 진출’ ‘손열음’ ‘정명훈’…. 2011년 공연계는 오랜 기간 숙원이었던 예술인복지법 통과를 이뤄냈고, 뮤지컬과 클래식은 대중적으로도 인기를 끄는 문화 선택지로 자리매김했다. 저마다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낸 공연계 각 분야를 결산한다.

◇연극·뮤지컬=남산예술센터 명동예술극장 국립극단 등 공공제작극장이 양질의 공연을 만들어낸 한 해였다. 남산예술센터의 ‘됴화만발’ ‘푸르른 날에’, 명동예술극장의 ‘우어파우스트’, 국립극단의 ‘오이디푸스’ 등이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성공하며 성황을 이뤘다. 국립극장 페스티벌 초청작이었던 코메디 프랑세즈의 ‘상상병 환자’도 인기를 끌었다.

특히 지난해 재단법인으로 출범한 국립극단은 올해 완전히 안착했다는 평가다. ‘오이디푸스’ ‘키친’ ‘삼월의 눈’ ‘소년이 그랬다’ 등이 호평을 받으며 잇따라 히트했고, 국립극단이 사용하는 서울역 부근 백성희장민호 극장에 대한 인지도도 높아지고 있다.

안정적인 환경을 갖춘 공공제작극장의 선전은 대학로 소규모 극단들의 설 자리가 점점 비좁아지는 현실의 반증이기도 하다. 대형극장의 작품들이 연일 매진사례를 기록할 때 대학로 극단들은 홍보에 애를 먹기 일쑤였다. 심지어 공연에서 매진을 기록한 극단들도 티켓 판매로는 제작비를 회수하지 못해 적자를 보는 상황이 속출했다.

신시컴퍼니 오디뮤지컬컴퍼니 등 뮤지컬 기획사들의 연극 제작 도전은 올해에도 계속됐다. ‘레드’ ‘키사라기 미키짱’ ‘미드썸머’ 등이 흥행에 성공했다. ‘연극열전’이 휴지기를 가지면서 TV 스타를 앞세운 브랜드 연극 열풍은 다소 수그러들었다.

올해 뮤지컬계는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성과를 거뒀다. 해외로 지평을 넓혔으며, 새로운 기록을 쏟아냈다. 창작뮤지컬 ‘영웅’은 뉴욕 브로드웨이에 진출했고, 한류스타를 앞세운 ‘미녀는 괴로워’는 일본에서 성공했으며 CJ E&M은 뮤지컬 ‘맘마미아’로 중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지킬 앤 하이드’가 9개월 장기 공연하며 매출 200억원을 돌파했고, 신시컴퍼니의 ‘맘마미아’는 최단기간 1000회 공연을 기록했다. 창작뮤지컬 ‘광화문 연가’는 작품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중장년층 관객을 끌어들이며 흥행에 성공, ‘초연 창작뮤지컬로도 수익을 남길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

뮤지컬이 폭넓은 사랑을 받으면서 TV 스타들의 뮤지컬 진출도 활발해졌다. 마약복용 혐의와 군 입대로 한동안 공백기를 가졌던 탤런트 주지훈은 복귀 무대로 뮤지컬 ‘닥터지바고’를 선택했다. 조승우와 김준수는 지난해와 다름없는 인기를 누렸고, 티파니(소녀시대) 보람(씨야) 려욱(슈퍼주니어) 등 아이돌 그룹 멤버들도 흥행 면에서 좋은 성과를 거뒀다. 정선아 박은태 홍광호 등 뮤지컬계에서만 성장한 배우들도 대중적인 인지도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셰익스피어 열풍은 연극과 뮤지컬계 전반에 걸쳐 여전했다. 체코 뮤지컬 ‘햄릿’이 인기를 끌었고, 연극열전의 연극 ‘리턴 투 햄릿’이 개막했다. 극단 여행자의 ‘십이야’, 강동아트센터의 기획 공연 ‘십이야’, LG아트센터의 기획공연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등도 속속 무대에 올랐다.

◇국악·클래식·무용=2007년 ‘사천가’ 초연으로 화제를 모은 이자람은 올해 다시 창작판소리 ‘억척가’를 선보여 대성공을 거뒀다. 판소리에 기반한 국악 뮤지컬 집단 ‘타루’가 여류 명창 진채선의 삶을 다룬 신작 ‘진채선’을 선보여 호평을 받기도 했다.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으로 연희무대 공연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클래식계 최대의 화제는 제14회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젊은 영재들이 대거 입상한 것이다. 6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이 콩쿠르에서는 박종민 서선영이 성악 부문 1위, 손열음 조성진이 피아노 부문 2·3위, 이지혜가 바이올린 3위를 차지하는 등 5명의 한국인 수상자가 배출됐다.

‘말러가 대중음악이 됐다’고 할 정도로 말러 열풍도 이어졌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은 수준 높은 말러 교향곡 시리즈를 선보이며 관객들을 끌어 모았고, 전국 곳곳의 오케스트라들도 말러를 연주했다. 자연스럽게 브루크너도 대중의 관심사에 들어왔다. 3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가 브루크너 교향곡 8번을 연주했고, 10월 내한한 베를린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말러와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을 이틀에 걸쳐 각각 연주했다.

인지도 높은 해외 오케스트라가 잇따라 내한, 애호가들을 설레게 하기도 했다. 사이먼 래틀(베를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유리 시모노프(모스크바필하모닉오케스트라), 다니엘 바렌보임(웨스트이스턴디반오케스트라), 유리 테미르카노프(상트페테르부르크필하모닉오케스트라), 온드레이 브라베츠(프라하필하모니아) 등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지휘자들의 면면도 화려했다. 8회째를 맞은 평창의 대관령국제음악제는 내실과 흥행 양면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 축제로 자리잡았다.

정명훈 예술감독의 고액연봉이 논란을 빚기도 했지만, 서울시향의 괄목할 만한 성장도 중요한 이슈 중 하나였다. 2005년 정 감독 취임 당시 평균 유료 관객수 500여명은 2011년 1800여명으로 증가했다. 정 감독 스스로가 “서울시향은 (세계) 일류 바로 아래 정도 된다”고 말했을 정도다. 성시연 부지휘자가 지휘하는 공연이나 ‘진은숙의 아르스 노바 시리즈’ 등 현대음악에 대한 관심까지 덩달아 높아졌다.

발레계는 ‘대중화 원년’이라 할 정도로 풍성한 한 해였다. 연초 외화 ‘블랙스완’이 160만 관객을 동원했고, KBS TV 개그콘서트 프로그램 ‘발레리No’가 인기를 끌며 발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 2월 국립발레단의 ‘지젤’이 발레 공연 최초로 전회 전석 매진된 뒤 뒤이어 열린 제1회 대한민국발레축제에서도 ‘백조의 호수’ ‘지젤’ 등이 매진됐다. 반면 현대무용이나 창작발레는 클래식·드라마 발레가 누린 인기의 수혜를 입기 힘들었다.

국내 무용수들이 세계무대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해이기도 하다. 박세은은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에, 김기민은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에, 최영규는 네덜란드국립발레단에 입단했다. 서희는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의 솔리스트로 승급해 ‘지젤’ 주연을 따내기도 했다. 양대 발레단의 해외진출도 활발, 국립발레단이 10월 이탈리아에서 창작발레 ‘왕자 호동’을 공연했고 유니버설발레단도 한 해 내내 아시아 북미 중동 등지를 돌며 ‘심청’을 소개했다.

◇그 외의 이야기들=세종문화회관의 전직 고위관계자가 연루된 대관비리는 검찰의 압수수색과 기소라는 상처를 남기며 일단락됐다. 이 극장 공연사업본부장이 금품을 받고 공연장을 빌려주며 업체 측의 편의를 봐준 사실이 밝혀져 올해 7월 업자와 함께 기소된 것. 인지도 높은 극장과 공연기획사 사이 감춰져 있던 구습이 드러나 관객들을 우울하게 했다.

지난해 7월 공공문화기관의 무료초대권 배포가 금지됐음에도 불구하고 초대권 관행이 여전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6월 조사에 착수한 국민권익위원회는 세종문화회관과 예술의전당 측이 편법으로 무료초대권을 배포한 사실을 밝혀내고 11월 공개했다. 권익위에 따르면 예술의전당은 1억4000만원어치, 세종문화회관은 6975만원어치 초대권을 공연관계자와 직무 관련 기관에 배포했다. 극장 측은 “현실적으로 후원기업 등에 초대권을 배포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블루스퀘어 디큐브아트센터 강동아트센터 등 대형 극장들이 잇따라 개관, 극장에 대한 관객들의 접근성이 높아진 것도 올해 공연계에서 중요한 화두였다. ‘난타’ ‘점프’ 등 넌버벌 퍼포먼스들은 올해에도 변함없는 인기를 끌었고, 새로운 작품들도 잇따라 제작됐다. 특히 올해 첫 선을 보인 ‘비밥’은 아류작 아니냐는 시선 속에서도 넌버벌 시장의 파이를 확대하는 데 성공했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