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만난 음악, 그 오묘한 하모니… ‘아트 포르테-畵音:그림이 연주하다’
입력 2011-12-18 17:36
작곡가 비발디가 1723년에 지은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는 봄·여름·가을·겨울이 각각의 악장으로 구성돼 있다. 봄은 생기발랄하고, 여름은 천둥번개를 떠올리게 하고, 가을은 풍성한 느낌이며, 겨울은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다. 이를 미술작품으로 표현한다면? 이 음악을 피아노에 디자인해 연주한다면 그야말로 낭만적인 화음(畵音)이 되지 않을까.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내년 1월 8일까지 열리는 ‘아트 포르테(Art Forte)-화음(畵音):그림이 연주하다’는 국내 유명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피아노에 덧입혀 연주와 함께 선보이는 이색 기획전이다.
클래식 음악을 그림으로 묘사한 전시는 더러 있었지만 악기를 작품 소재로 활용해 연주까지 들려주는 경우는 보기 드물다. 이 전시에는 인기작가 5명이 참여했다.
나무와 숲, 사과와 정물 등을 담아내면서 ‘말과 글’이라는 문자를 화면에 빽빽하게 올리는 그림으로 유명한 유선태는 비발디의 ‘사계’ 이미지를 피아노에 옮겼다. 밤과 낮의 반복, 계절의 끊임없는 변화를 봄·여름·가을·겨울의 자연 이미지로 피아노에 그려냈다. 피아노 작품은 보는 이의 시선에 따라 회화가 되기도 하고 조각이 되기도 한다.
역동적인 오방색의 색면을 통해 소통을 얘기하는 하태임은 자신의 작품처럼 피아노에 컬러밴드를 색칠함으로써 리듬감을 살렸다. 통통 튀는 그림이 리스트의 ‘파가니니 대연습곡’ 중 3번 ‘라 캄파넬라’를 듣는 것 같다. 숯 설치작가로 국내외에서 호평받고 있는 박선기는 흑백의 바코드를 피아노에 조각했다.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바흐의 ‘미뉴에트’와 잘 어울린다.
얼룩말 등 동물을 소재로 작업하는 김남표는 자신의 작품 주제인 ‘인스턴트 풍경’을 피아노에 적용했다. 회화와 조각이 어우러진 그의 작품은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와 조화를 이룬다. 또 아이돌 그룹 2NE1의 앨범 재킷 캐릭터를 그린 마리킴은 피아노 전체를 검은 색으로 디자인했다. 사랑과 우울, 꿈과 혼돈이 교차하는 이미지가 베토벤의 ‘열정’을 닮았다.
피아노 외에도 박수환 유영운 홍명화 윤병락 한조영 오수환 신동원 서유라 등 작가들이 바이올린에 각자의 작품 이미지를 넣었고, 강영민은 트럼펫, 전병현은 첼로, 배주 두민 아트놈 석철주 등은 기타를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이들 작가의 작품은 31일까지 진행되는 자선경매 ‘해피뮤직’에 재능기부 형식으로 제공된다. 누구나 서면응찰로 경매에 참여할 수 있다. 28일 오후 6시에는 피아니스트 김경은 김세희가 연주하는 ‘화음-갤러리 콘서트’가 열린다.
이 전시와 별도로 바로 옆 가나컨템포러리에서는 젊은 작가 강세경과 정도영의 2인전이 내년 1월 1일까지 마련된다. 강세경은 일상의 풍경을 뚫고 캔버스 밖으로 돌진하는 자동차의 모습을 통해 현실과 욕망 사이의 경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정도영은 대중의 심리를 만화적인 캐릭터로 표현했다. 연말연시를 맞아 차분하게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게 하는 전시들이다(02-720-1020).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