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12월 19일] 우리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
입력 2011-12-18 17:55
찬송 : ‘주의말씀 받은 그날’ 285장(통 209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요한복음 11장 1~44절
말씀 :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것은 죽은 한 사람을 살려서 생명을 조금 더 연장해 주신 사건이 아닙니다. 이것을 요한복음은 표적, 즉 사인(sign)이라고 말씀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백성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서 보여주는 사인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26절) 예수님께서 죽어도 살겠다고 하는 것은 미래에 살아나는 것만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 나사로가 육신으로 죽었지만, 분명히 그는 여전히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서 살아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아직 육신적으로는 죽지 않았지만, 마르다와 제자들 역시 영원한 생명을 빼앗기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한 가지를 전제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 믿는 자들에게는 두 가지의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육체의 생명이고, 둘째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모든 사람은 육체의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 안에는 육체의 생명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장차 미래에 이뤄질 일이 아니라, 예수 믿는 즉시, 그리고 지금 현재 이미 작동하고 있는 생명의 엔진을 말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엔진이 두 개 있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의 백성들은 육체의 생명이라는 엔진이 꺼지는 것이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영원한 생명이라는 엔진이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영원한 생명’이라는 엔진은 절대로 꺼지는 법이 없습니다. 나사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사로 안의 영원한 생명의 엔진이 결코 꺼지지 않고 지금도 작동하고 있어서 그는 살아 있는 것이며, 그러기에 제자들 역시 육체의 생명이 꺼지는 것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둠과 절망의 시간이 되면 사람들은 자신의 영적인 실상이 드러납니다. 마르다와 마리아 그리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닌다고 했지만, 그들은 바로 이 가장 중요한 영적인 진리에 대해서 모호하고 막연했습니다. 예수님과 마르다 사이의 대화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나사로를 다시 살려내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성경은 ‘살려낸다’란 표현이 아닌 ‘불러낸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살아 있는 나사로를 다시 불러냄으로써 그가 현재 영원한 생명 가운데 분명히 살아 있다는 것을 온 천하에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사로 개인의 생명연장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우리 안에는 두 개의 엔진이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해야 할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 안에는 육체의 생명이라는 하나의 엔진이 있지만, 우리 안에는 멈추지 않고 꺼지지 않는 또 다른 엔진이 있습니다.
다시금 근본적인 질문을 해 보십시다. 우리는 우리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까? 이것이 희미하거나 모호하지 않습니까? 장차 미래에 될 일이 아니라 지금 현재, 이미 내 안에 이 영원한 생명이 작동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까? 누리고 있습니까? 나사로를 불러내시는 주님을 다시금 바라보십시다.
기도 : 주님, 우리가 다시금 확신하기를 원합니다. 내 안에 꺼지지 않는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확신하고 믿음 가운데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박지웅 목사 (서울 내수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