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시간 자원봉사의 여왕’ 83세 이주섭 할머니… 어려운 이웃에 쌀 전달 ‘쌈짓돈 기부’

입력 2011-12-16 18:46

‘3000시간 자원봉사의 여왕에서 다시 기부천사로.’

충북 청주시 내덕2동에 사는 이주섭(83) 할머니가 그 주인공이다. 이 할머니는 지난 8일 내덕2동 사무소를 찾아 홀로 사는 노인이나 소년소녀가장 등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 달라며 10㎏들이 쌀 50포대(시가 110만원)를 내려놨다.

동사무소 직원들은 조용히 돌아서는 이 할머니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직원들은 “기부의 귀감이 돼 달라”며 할머니를 설득해 작은 전달식을 갖고 기부한 쌀을 이웃 주민 50명에게 나눠줬다. 이 할머니는 6일에도 충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어려운 노인들에게 써 달라며 현금 120만원을 지정기탁했다. 이 할머니는 “추워진 날씨 속에 시름에 잠긴 이웃들의 마음이라도 조금 따뜻해지라고 작은 정성을 전했다”고 말했다.

기부천사가 된 이 할머니는 사실 자원봉사의 여왕이었다. 경기도 안양시에서 45년 동안 살면서 쌀가게, 복덕방, 여관 등을 운영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큰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5남매를 반듯하게 길러냈다.

이 할머니는 자녀들이 생활기반을 잡자 1994년부터 이웃에게 눈길을 돌렸다. 짬 나는 대로 장애인·노인복지시설, 보건소 등 어려운 사람들이 있는 곳 어디든지 달려가 봉사를 했다. 2007년 안양시가 ‘자원봉사 3000시간 인증패’를 전달했다.

할머니는 남편이 먼저 세상을 뜨면서 자신마저 심장 질환을 앓자 5년 전 넷째 딸 원순자(51)씨가 사는 청주로 이사했다. 하지만 딸 부부에게 부담되기 싫다며 36㎡ 아파트에서 홀로 살았다. 이 할머니는 병원치료를 통해 몸이 조금씩 나아지자 우암노인복지센터 등 복지시설에서 다시 봉사시간을 늘려갔다.

이 할머니는 “많이 갖고 힘이 많은 이들만 남에게 나눠줄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며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주변을 둘러보면 작은 손길을 기다리는 곳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딸 원씨도 어머니의 봉사활동에 감동해 모녀 자원봉사자의 길로 접어들었다. 우암복지센터에서 함께 봉사할 때는 수용자뿐 아니라 봉사자들의 부러움을 살 정도가 됐다. 이 할머니는 요즘 기력이 부쩍 떨어지고 허리마저 불편해 거동하기 어려워지자 쌈짓돈을 털어 나눔을 이어가고 있다.

이 할머니는 “앞으로 얼마간이 될지, 몇 푼이 될지 모르지만 사는 동안 조금이나마 남에게 힘이 된다면 거듭거듭 돕고 싶다”면서 “너무 작고 보잘것없어 남에게 책이나 잡히지 않을지 모르겠다”고 겸손해했다.

청주=이종구 기자 jg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