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노숙인이 만든 빵·된장… 가슴으로 샀죠” 한파 녹인 ‘사회적기업박람회’ 르포
입력 2011-12-16 18:04
한파가 엄습한 16일 오전 서울 수유동 호텔아카데미하우스에 추위를 녹이는 정겨운 장(場)이 섰다. 북적거리는 인파에 추위도 멈칫했다. 자전거, 비누, 커피, 유기농 채소와 쌀, 미역과 김, 빵과 쿠키 등 겉만 보면 여타 시장이나 마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뭔가 달랐다. 제품을 생산하고 물건을 파는 이들의 모습이 범상치 않았다. 장애인, 노숙인, 새터민 등 흔히 사회에서 취약계층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이날 기독교사회적기업지원센터 주최로 호텔아카데미하우스 내 새벽의 집에서 열린 ‘사회적기업박람회’에는 전국 580여개의 사회적 기업 중 노숙인의 자활을 위해 만든 ‘도농살림’과 ‘두 바퀴 희망자전거’, 다문화가정의 자활을 위해 만든 ‘떴다 무지개’, 중증장애인의 자립을 위해 만든 행복을 파는 장사꾼 등 총 15개 기업이 참여했다.
박람회를 기획한 기독교사회적기업지원센터 총괄본부장 이준모 목사는 “사회적기업들이 판로의 문제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에서, 한국교회가 성탄을 맞아 희망을 만들어 주자는 취지에서 고용노동부의 지원을 받아 박람회를 준비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사업 실패 후 2년여의 노숙 생활 끝에 2009년 대한성공회유지재단 다시서기센터를 통해 두바퀴희망자전거에 입사한 김진석(46)씨. 김씨는 자신이 조립한 자전거의 안장을 토닥이며 말했다. “일을 할 수 있다는 것과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행복합니다. 이 일을 통해 적지만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고,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도 있는 여유도 얻었습니다.”
김씨는 “버려지거나 낡은 자전거를 수거 혹은 기부 받아 닦고 기름칠하고, 부품을 교체해 재활용 자전거로 만들어 5만∼10만원에 판매한다”며 “자전거가 필요한 곳에는 무상으로 전달하기도 한다. 언제든 수리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두바퀴희망자전거 맞은편에는 장미 모양의 비누 꽃들이 놓여있는 테이블이 있었다. ‘행복을 파는 장사꾼’ 김정한(42) 기획실장은 “비누로 만든 이 꽃들은 저희와 함께 일하는 15명의 중증장애인들이 만든 것”이라며 “꽃다발 크기에 따라 1만원에서 4만원”이라고 소개했다.
비누 꽃다발을 구매한 이종희(75·여)씨는 “박람회 오기 전까지는 제품에 하자가 있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이 있었다”며 “하지만 막상 와서 보니 오히려 가격은 저렴하고 질은 높다. 만든 이들의 열정도 느껴진다”고 말했다.
박람회에는 교계 및 관계 인사들도 다수 참석했다. 박경수 강북구구청장은 “사회적기업의 성공여부는 이웃에 관심을 갖는 복지에 대한 관심,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중요한데 이 측면에서 기독교계 사회적기업은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유정성 총회장은 “취약계층의 자활을 돕고, 공정무역 제품을 사용하는 등 사회적기업은 기독교의 사랑정신을 실천하기에 매우 적합한 모델”이라고 평가했다.
◎ Key Word - 사회적 기업
취약계층에게 사회서비스 또는 일자리를 제공하여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등의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재화 및 서비스의 생산·판매 등 영업활동을 수행하는 기업을 말한다(사회적기업육성법 제2조 제1호).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영리기업과 달리 사회적기업은 사회서비스의 제공 및 취약계층의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하며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갖춰야 한다. 국내에서는 2007년 7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