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한승주] 러시아의 봄, 그 출발

입력 2011-12-16 17:40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소련 해체 이후 20년 만에 러시아에서 최대 규모의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그동안 ‘사실’에 눈 감았던 언론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친 정부 성향의 러시아정교회는 민중의 편을 들었다. 미국·영국 등 국제 사회도 러시아를 비난하고 있다.

러시아는 ‘아랍의 봄’과 비슷한 길을 밟고 있다. 침묵하던 시민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집결한다. 독재자의 측근이 이탈하면서 내부분열이 일어나고, 국제적인 우려와 비난이 나오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번 시위의 직접적 발단은 부정선거다. 좀 더 넓게 보자면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의 장기집권 시도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이다. 푸틴은 러시아 헌법의 대통령 3선 제한 규정에 막히자 재임당시 비서실장을 지낸 심복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대통령 자리에 앉혔다. 자신은 총리로 4년을 기다리다가 메드베데프의 임기가 끝나가면서 대선후보로 다시 나섰다. 그동안 헌법이 바뀌어 대통령 임기가 4년에서 6년으로 늘어났다. 중임도 가능하다. 8년 집권한 것도 모자라 최대 12년을 더 노리는 것이다.

국민들은 반발했다. 장기집권의 피로감과 독재에 가까운 통치에 대한 거부감이 겹쳤는데도 푸틴은 민심을 읽지 못했다. 그는 “러시아 국민은 색깔 혁명(정권교체 혁명)을 원치 않는다” “서방의 돈을 받고 활동하는 야권 세력에 대한 처벌 강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도 중국처럼 인터넷을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 여론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뒤늦게 국민과의 대화로 돌파구를 꾀했지만 대세를 거스르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번 시위는 내년 3월 푸틴의 재집권을 막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의미는 크다. 러시아는 이제 시민사회로 가는 긴 여정의 출발선에 섰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힘을 합치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했다. 시위의 전면에 나선 이들이 엘리트 중산층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도시의 전문직 젊은 세대들이 독재에 염증을 느끼고 정치적 권리에 눈을 뜬 것이다.

앞으로 러시아는 큰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도도하게 흐르는 민주주의의 물결을 누구도 막을 수는 없으니까. 바야흐로 ‘러시아의 봄’이 시작됐다.

한승주 차장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