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희의 ‘외로운 영혼들의 우체국’… 대표 문인 26명과의 대담집 속살 파고드는 질문 일품
입력 2011-12-16 17:36
“그녀는 무서운 인터뷰어다. 인터뷰이인 작가들을 단박에 무장해제 시켜버린다. 책을 보니 까탈스런 작가들이 속내를 속없이 잘도 불었구나, 싶다. 칼보다 더 강한 게 펜인데, 도대체 그녀의 무기는?”(소설가 권지예)
권지예가 언젠가 꼭 인터뷰를 하고 싶은 작가라고 소개한 수필가 정진희(52·사진)의 ‘외로운 영혼들의 우체국’(도서출판 서영)은 한국문단을 이끌어 가고 있는 주요 작가들과의 대담집이다. 고은 김주영 조정래 윤후명 이승우 전경린 권지예 함민복 김선우 등 명성 높은 시인·소설가 26명을 망라한 대담집은 그들의 유명세로 인해 이미 알려져 있는 이야기를 뺀 진짜 알맹이들로 짜여져 있다.
예컨대 고은 시인과의 대담에서 저자는 불쑥 시인의 미래에 대해 묻는데 돌아온 대답이 걸작이다. “미래는 불가측이야. 캄캄한 달의 이면인 거지. 미지의 달 후면인 거야. 가서 봐야 해. 자기가 쪼개져서 가는 거야.” 덧붙여 “인류의 마지막 가치는 여성성이야. 지구의 모든 것은 여성적 가치로 귀결되리라고 봐”라는 뜻밖의 득의까지 얻어 듣게 된다. 이렇게 불쑥 들이미는 타법이야말로 상대방의 견고함을 단박에 허물어뜨리는 저자만의 무기인 셈이다.
황당 인터뷰 전말기도 눈길을 끈다. 함민복 시인을 찾아가기 위해 강화도로 온 저자는 정작 약속한 당일에 전화는 불통이어서 결국 경찰의 안내로 함 시인의 자택을 찾았으나 허탕이었다. “섬 전체를 수소문 끝에 강화문학회를 통해 동막리 모 음식점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 출동했더니 시인은 사흘째 내리 술만 먹고 있는 중이었다.” 문인들의 속살을 파고드는 저돌적인 질문과 글 솜씨도 맛깔스럽다.
정철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