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에 담긴 시인의 고뇌까지 번역” 한시 해설서 ‘옛 시정을 더듬어’ 낸 한학자 손종섭씨
입력 2011-12-16 17:33
50대 중반 중년은 묏자리를 보러 다녔다. 질병 때문에 28년간 몸담은 교직을 그만둘 무렵이었다. 수명이라는 건 이상도 하지.
“환갑을 못 넘기겠다”던 병골은 칠순에 건강해졌다. 남들의 한 생애가 끝나자 삶이 찾아온 것이다. 칠순에 몸이 가벼워진 그는 “목까지 차오른 걸 쏟아내는 식으로” 혹은 “미쳐야 미친다(불광불급·不狂不及)는 옛 말처럼” 홀린 듯이 글을 썼다.
한학자이자 전직 고교 국어 교사인 손종섭(93) 선생이 일흔넷에 쓴 한시 해설서 ‘옛 시정을 더듬어였다. 우리 가락을 살린 아름다운 번역문으로 유명한 이 책은 몇 년 전부터 학계와 서점가에 불기 시작한 한시 열풍의 원조였다.
최근 손 선생의 ‘옛 시정을 더듬어’가 그 후 나온 후속편 ‘다시 옛 시정을 더듬어’와 함께 ‘옛 시정을 더듬어1,2’(김영사)로 묶여 재출간됐다. 출판사는 ‘이두시신평’ ‘노래로 읽는 당시’ 등 그가 만년에 쓴 저서 10여권을 추려 시리즈를 기획하고 있다. 우리 문학 영토 안에서 새롭게 읽어낸 노익장의 한시(漢詩)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된 것이다.
70대에 첫 책 내고 90대에 전집을 시작했고 그게 마무리되면 생애 첫 창작집을 낼 계획이라는 손 선생을 14일 경기도 김포의 자택에서 만났다. 40대까지 유학자 선친께 시문을 배웠다는 그는 우아하고 지적인 언어로 지치지 않고 한시를 논했다.
-책에서 국문학이 한문학 유산을 흡수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습니다.
“우리 고전문학이라는 게 뭐가 있나. 신라 향가와 고려 가요 몇 수밖에 없지 않나요. 그걸 우리 고대 문학이라고 하면 얼마나 빈약한가요. 신라와 고려시대 그 많은 한시와 한문 작품을 중국 글자라고 빼버리면 남는 게 없어요. 선인의 옛 한시를 우리 시로, 우리 고문학 영역으로 편입시켜야 해요. 우리 한시는 우리 문학이에요. 중국 한시와 우리 한시는 달라요. 담긴 시정(詩情)이 중국 게 아니라 완전히 우리 거니까. 당연한 얘기잖아요. 중국 한시에는 저들 나라의 사정과 환경, 형편이 담겼고 우리 시는 우리 산천초목 속에 사는 백성의 삶과 조정 형편, 금수강산 풍광, 정서를 옮긴 거잖아요. 흠뻑 우리 정서인 거죠. 그저 한자를 빌리고, 한시 형식을 빌린 것일 뿐.”
-우리 옛 한시를 “우리 가락으로 조율된 귀화 한시”라고 했습니다. “국문학적 음운으로 숙성됐다”는 표현도 있고. 한시 속 우리 음운이라는 게 무슨 뜻인가요.
“한자 문화권이 공유한 한자의 모양은 같지만, 나라마다 읽는 법은 다르잖아요. 중국 다르고 일본, 조선, 베트남 다르고. 시 쓰고 읽어보는 걸 구송(口誦)이라 하고 흥 날 때 토 달고 가락 넣어서 읊조리면 그게 구창(口唱)이에요. 옛 시인은 구송과 구창을 했는데 그렇게 우리 음으로 읽다 보면 어떤 건 내 말로, 내 입에 착 달라붙지가 않거든요. 그래서 바꾸고 조절하고 조정하면 내 마음과 내 정서에 딱 맞는, 내게 쾌감을 주는 글자로 조율되는 거지요. 그게 우리 음이고 우리 가락인 거예요. 신라 말 학자 최치원(857∼?)의 ‘가을밤 빗소리를 들으며’는 각 행이 음(吟), 음(音), 심(心)으로 끝나요. 종성이 비음 ‘ㅁ’ 인거죠. 시를 소리 내서 읽어보면 그 비음이 시인이 느낀 공허감과 무상감을 갑절 더 돋우는 느낌이에요. 이게 내가 말한 국문학적 음운이고, 음운적 조율이고, 숙성된 우리 음이에요. 시인이 의도적으로 한 건 아닐 거예요. 읊어보고 고민한 끝에 그런 짜임새로 낙착된 거지.”
-그런 가락과 음운, 시정까지 번역한다는 건 어려운 일 같습니다. 일반 독자에게 한시가 어려운 이유이기도 할 테고.
“한시는 산문과 달라서 짧은 글에 담긴 시정의 깊이가 굉장히 깊고 넓어요. 그래서 한자를 한글로 한자씩 바꾸는 거로는 뜻을 제대로 번역할 수 없어요. 나는 시 테두리 바깥에 멀찍이 서서 번역하거나 평론하질 않아요. 나는 이내 시 속에 몰입해요. 시인이 시상 하나를 아이 갖듯 포태해서 입덧하고 난산하는 과정을, 하나의 시상이 시가 되기까지 고민과 고뇌를 나 스스로 겪어요. 내가 산고를 겪고 내가 시를 쓰는 거라고, 나는 그렇게 말할 수 있어요. 내 시가 되고, 내가 시인이 되고, 내가 산고를 겪고, 내가 고민하고, 내 말로 옮기는 거지. 좋은 번역을 하려면 시 속 시인의 혼과 만나야 해요. 시를 옮긴다는 것은 시 정신을 옮기는 거니까. 비평할 때도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평해요. 그래서 내 번역과 평이 독보적인 거야(웃음).”
-두 권의 책에 400수 넘는 신라와 고려, 조선시대의 시를 번역하고 해설했습니다. 누구의 시를 어떤 기준으로 뽑았나요.
“한시에는 풍월시가 있어요. 사상이나 뼈대가 없고 그날그날 술이나 마시고 허풍이나 떨고 제 잘난 소리나 하고. 그건 시가 아니거든. 시는 정(情)이에요. 1000년 전 시가 1000년 후 우리 가슴을 두드릴 수 있고, 가슴 찡해지고 눈물이 흐르는 거예요. 시 안에 담긴 깊은 시정이 감동을 주는 거거든. 그게 시예요. 상대적으로 역관, 기생, 노예처럼 대접 못 받던 계층의 시를 많이 뽑았어요. 조선시대 관노 출신으로 어무적이라는 시인이 있는데 양반의 탐욕을 조롱했다가 쫓겨 다녔어요. 그가 이렇게 읊었죠. ‘한 고을 한 사람씩 특사가 온들/ 특사는 귀 없고, 백성 입 없어/ 차라리 급장유(옛 간신 이름)를 불러 일으켜/ 구해 달라 호소함이 외려 낫겠네.’(‘떠도는 백성’ 중) 천대와 한이 뼛골에 사무친 이의 절규이자 폭로이고 고발인데, 절박함을 어디에 비교하겠어요?”
-제일 좋아하는 시와 시인을 꼽는다면.
“그걸 어떻게 말해요. 너무 많은데. 정다산(정약용·1762∼1836) 선생 시가 좋긴 하죠. 시가 백성 아끼고 나라 걱정하는 마음으로 가득해요. ‘가난에 편하리라 작심했건만/ 막상 가난하니 편치 못하네// 아내의 바가지에 체통 꾸기고/ 아이들 배고프니 매도 못 들어,// 꽃을 봐도 그저 쓸쓸만 하고/ 책을 대하여도 심드렁할 뿐’(‘가난을 한탄하며’) 어때요? 음풍농월(吟風弄月)은 시가 아니라는 말 이해가 되지요?”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