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비가 특등사수?” 저격수들은 콧방귀… 킬러, 지나던 바람도 그 앞에선 숨을 멈춘다

입력 2011-12-15 20:02


한 방에 적을 제압하는 저격수는 최근 대 테러전 수요가 증가하면서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국방부도 지난 2월 북한의 특수전 부대 기습과 시가지 전투에 대비해 예비군 부대에 저격수 3만여명을 양성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발표했다.

12일부터 육군 특전사령부 소속 저격수들은 3주 일정으로 경기도 모처의 특임대대에서 훈련을 갖고 있다. 소속 부대의 자존심을 건 대결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 훈련을 앞두고 제1공수여단 저격수들이 지난 7일 인천시 계양구 갈산훈련장에서 사격연습을 벌였다. 이들의 모습을 지켜봤다.

바람과 온도를 느껴라

사격장은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불어 초겨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풀밭은 대부분 빛이 바랬지만 군데군데 푸른빛이 남아있었다. 수풀 사이에서 갑자기 쌍안경처럼 생긴 장비를 든 형체가 불쑥 일어섰다.

초록색 길리수트(위장복)를 입은 권문수(26·가명) 중사였다. 관측수인 그는 거리측정기로 목표물을 확인했다. 거리측정기 렌즈에 비친 빨간 점을 목표물에 대고 누르자 숫자가 나타났다.

“거리 221m.”

저격수가 하는 사격치고는 비교적 거리가 짧았지만 이번에는 위장이 더욱 중요하다. 짧은 사거리에서 자신의 위치가 노출되면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권 중사는 사수인 우민(26·가명) 중사에게 목표물에 대한 거리 정보를 알려줬다. 우 중사 역시 길리수트로 위장했기에 식별하기 매우 힘들었다. 권 중사는 이어 온도계가 달린 자신의 손목시계를 바라본 뒤 말을 이었다.

“온도 섭씨 8도.”

다음은 바람. 이날 훈련에서는 풍향측정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바람의 방향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목표물 주변에 있던 깃발과 햇빛의 방향이 단서다. 깃발은 펄럭펄럭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제법 휘날리는 수준이었다. 해가 비치는 방향을 고려해 볼 때 오른쪽이 동쪽이다.

“바람 방향은 서에서 동으로 약 3∼4노트(5.5∼7.4㎞).”

관측수의 보고가 끝나자 우 중사의 총구가 조용히 수풀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저격수들은 2인1조로 움직인다. 경험 많은 관측수가 주변 환경을 살핀 뒤 사수에게 관련 정보를 알려준다. 조준경에 집중하는 사수의 시야가 좁아지는 것을 관측수가 보완해주는 것이다.

우 중사는 5발들이 탄창을 조심스럽게 소총에 끼운 뒤 조준경을 뚫어지게 봤다. 조준경에 표시된 열십자 모양에 목표물이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관측수의 보고에 맞춰 가늠자(크리크) 조정을 한 우 중사의 호흡이 잠시 멈췄다. 그의 심장박동도 같이 멈췄다.

“탕”

지축을 뒤흔드는 강력한 총성이 사방을 뒤흔들었다. 저격용 소총의 총성은 일반 소총과는 비할 바가 아니다. 일반 보병이 사용하는 K-1소총에 사용되는 탄환은 구경이 5.56㎜이다. 반면 저격수가 사용하는 탄환은 위력이 훨씬 강한 7.62㎜나 라푸아 매그넘 같은 대구경 탄환이다.

일반 소총에 비해 구경이 큰 탄환을 사용하는 것은 사거리와 살상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5.56㎜의 유효사거리는 300∼500m에 불과하다. 하지만 7.62㎜는 800∼1000m다. 2009년 11월 영국 육군의 크레이그 해리슨 상병은 아프가니스탄 헬만드주의 무사칼라시에서 영국제 L115A3 저격소총과 매그넘 탄환을 사용해 2475m 밖에서 탈레반 병사를 제거했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먼 거리에서 저격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구경이 큰 탄환을 사용하려면 자연히 탄환에 들어가는 화약의 양도 늘어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폭발력이 커져 소리 역시 커진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저격수는 훈련 때 귀를 보호하기 위해 귀마개를 한다.

가수 ‘비’가 특등사수? 저격수들은 콧방귀

우 중사가 겨냥한 타깃 쪽에서 꽃가루가 공중으로 흩날리는 게 보였다. 목표물에 맞았는지 식별하기 위해 풍선에 꽃가루를 넣어둔 것이다. 우 중사가 잠시 호흡을 고르자, 총구는 다시 불을 뿜었다.

“탕”

목표물 왼쪽에 있는 풍선을 정확히 맞췄다. 10여초 간격으로 이어진 5발의 사격은 모두 명중했다. 우 중사가 사격을 하기 전에 풍향과 풍속, 온도를 확인한 것은 이런 요소가 명중률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온도가 낮으면 공기 밀도가 높아진다. 그렇게 되면 총알이 헤쳐 나가야 할 공기 분자가 많아져 사거리가 짧아지는 경향이 있다. 반면 온도가 높으면 공기 밀도가 낮아져 사거리가 길어진다. 온도가 5도 차이 나면 100m 거리에서 10㎝, 500m 거리에서는 50㎝의 오차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저격수들은 대체로 섭씨 22도 내외의 상온을 좋아한다.

바람도 변수다. 발사된 탄환은 목표물을 향해 직선으로 날아가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곡선운동을 한다. 2003년 4월 영국군 해병대 샘 휴즈 상병은 강풍 속에서 860m 거리의 목표물을 맞추기 위해 목표물의 오른쪽 17m 지점을 겨냥, 사격한 뒤 명중시켰다.

사격을 마친 권 중사와 우 중사가 풀밭을 빠져나왔다. 이번 훈련은 특전사 저격수들과 12일부터 ‘일합(一合)’을 겨루기 위한 가벼운 워밍업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거리가 200∼300m 내외로 짧았다. 100m나 200m, 250m 사격은 일반 보병들도 하는 기본 거리다. 지난달 신병훈련소를 나온 가수 비(본명 정지훈)도 주간사격 20발 중 19발, 야간사격 10발 중 10발을 맞혀 특등사수에 뽑힌 바 있다. 일반 보병과 차이가 없다면 그건 저격수가 아니다. 보통 저격수들은 기본훈련을 400m에서부터 시작한다. 시력이 좋지 않은 일반인에게는 목표물이 보이지도 않는 거리다.

사격훈련은 거리를 늘려가면서 계속되는데 500m의 경우 5발을 사격해 지름 7㎝안에 모두 맞춰야 한다. 700m에서는 바람이 좌에서 우로 7마일(12.9㎞)가량 부는데도 정확히 표적을 맞추기도 한다. 국내 최장 저격거리는 1000m다. 해리슨 상병처럼 좀 더 긴 거리의 표적을 맞춘 사례가 없는 것은 국내에 그만한 길이를 가진 사격장이 없다는 것이 한 이유다.

전쟁 비용 줄이고 적진에 공포심 안겨

우수한 광학기술을 바탕으로 고배율의 조준경을 소총에 부착한 독일군 저격수는 1차 세계대전에서 참호 밖으로 머리를 내밀던 영국군을 집중 저격했다. 2차 대전에서는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의 실존 모델이기도 한 당시 소련의 바실리 자이체프가 무려 400명의 독일군을 저격했다. 최근의 이라크전에서는 이라크군 저격수들이 미 해병대 대대의 진격을 저지하는 등 전술적으로 큰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1월 소말리아 해역에서 납치된 삼호주얼리호 구출작전에서 해군 UDT저격수가 헬기에 탑승한 채 해적 제압에 나서는 등 대테러 진압작전에서 위력을 보였다.

저격수의 필요성은 전쟁에서의 경제성 측면에서도 강조된다. 1차 대전에서 일반 전투원이 적 1명을 제압하는 데는 평균 7000발의 탄약을 사용했다. 2차대전에서는 2만5000발까지 늘었다. 하지만 저격수는 단 한발로 적을 쓰러뜨릴 수 있다. 베트남전에서는 저격수가 평균 1.7발로 적 1명을 제압했다는 통계도 있다. 단순 계산으로도 막대한 전쟁비용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적 지휘관 등 주요 인물에 대한 저격에 성공했을 경우 나머지 적들에게 심리적 공포를 안겨주는 부수효과도 얻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군 관계자들은 “저격수 한 명이 1개 중대 병력 이상의 역할을 한다”고 평가하고 있다. 현재 육군 특전사와 해군 UDT, 해병대 등에서 저격수를 양성하고 있다. 경찰은 경찰특공대에서 저격수를 훈련시키고 있으나 구체적인 규모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저격수가 되기 위한 조건은 매우 까다롭다. 사격 실력은 기본이고 나안시력 1.5 이상, 5㎞ 18분 내외 주파 등 신체적 자격을 갖춰야 한다. 식량과 물, 수면 등이 부족한 환경에서 지속적인 작전을 펼쳐야 하는 경우가 많아 강인한 체력도 요구된다. 담배는 당연히 금물. 담배를 피우면 냄새로 적에게 노출될 우려가 있다. 또 흡연으로 신경계가 흥분하면서 심장박동이 안정되지 않아 정확한 사격에도 지장을 줄 수 있다.

우 중사는 “사격을 잘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저격수 선발에는 심성도 매우 중요한 요소”라면서 “침착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무래도 사격 정확도가 높아 저격수에 뽑힐 가능성이 많다”고 말했다.

이렇게 엄선된 저격수 자원은 특전사 내 특임대대에서 5주간 위장술과 탄도학, 관측학 등의 훈련을 거쳐 ‘완전한 킬러’로 태어난다. 이들에게는 고가의 저격용 소총과 고배율의 조준경, 각종 관측장비 가 지급된다. 우리 군이 주로 사용하는 저격용 소총은 오스트리아 슈타이어사의 SSG 69P-II인 것으로 전해졌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대표는 “저격수는 적의 진격을 상당시간 늦춰 우리 부대의 재편시간을 벌 수 있고 적의 우두머리를 제거할 수 있는 저비용 고효율의 전술전력”이라며 “부사관 이상의 전문 저격수들이 대대급에 2개팀 이상 운영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인천=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