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명인, 색다른 크리스마스를 연주하다
입력 2011-12-15 17:40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기타를 한 번도 안 쳐보는 건 자기 자신에게 죄를 짓는 거예요.”
인터뷰 내내 조용했는데 이 말을 할 땐 목소리가 커졌다. 열한 살 때 기타를 잡아 올해로 35년. 기타리스트 이병우(46)는 그 오랜 시간 기타만 생각하며 살았다고 했다. ‘이렇게 기타를 쳐보면 어떨까’ 고민하고 시도해보는 삶. 이것이 바로 자신의 인생이었다는 것이다.
35년간 기타를 치면서 지겨웠던 적은 없었는지 물었을 때도 돌아온 답변은 단호했다. “전혀 없었어요.” 그리고 대화 틈틈이 기타 예찬론이 반복해서 펼쳐졌다.
“기타는 정말 최고의 악기예요. 많은 사람들이 쉽게 배울 만큼 대중적이지만 그 안에는 전문가들도 발견 못 한 큰 세계가 숨어 있어요. 안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깊이 파면 팔수록 생각할 게 많아져요.”
이병우를 만난 건 지난 11일. 그가 교수로 몸담고 있는 서울 미아동 성신여대 캠퍼스에서였다. 오는 23일 그는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콘서트를 여는데, 공연장을 찾는 관객이라면 이병우가 주장하는 기타의 마력을 실감해볼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번 공연이 그간 열었던 콘서트와 뭔가 다를 것이라고 단언했다. “지금까지 공연을 열면 연주하고, 관객과 대화하고, 연주 다하면 무대에서 내려오고, 제겐 이게 전부였어요. 그런데 이제 무대 연출에 관심이 생겼어요. 음악 외적인 것도 무대에 녹여보고 싶어요.”
이어 구상 중인 아이템을 하나씩 열거했다. 팬터마임 연기자와 함께하는 합동 공연, 크리스마스 공연이지만 무대 뒤 스크린에 태양이 이글거리는 태평양 영상을 보여주는 일….
물론 이 같은 아이디어는 아직 구상 단계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콘서트와는 다를 것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현재 확정된 건 이병우 공연에 자주 동원된 오케스트라가 없다는 점, 대신 밴드와 관악기, 어린이 합창단이 함께한다는 것, 그래서 조금은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분위기가 연출될 것이라는 점 정도였다. 그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공연을 만들 것”이라고 했다.
“성탄절을 앞두고 예술의전당에서 콘서트를 여는 게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예요. 근데 작년에 보니 가족 단위로 오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연말에 공연은 많지만 가족 구성원 전부가 좋아할 만한 콘서트는 별로 없잖아요. 귀중한 시간을 내서 오시는 분들이니 좋은 음악 들려드려야죠.”
사실 이병우는 언젠가부터 대중에게 영화음악 감독으로 더 유명해졌다. ‘왕의 남자’ ‘장화, 홍련’ ‘마더’ 등 수많은 영화는 그의 기타 선율이 포개지면서 묵직한 감동을 품게 됐다.
가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전설이자 거장이다. 그가 고작 스물한 살이던 1986년, 베이시스트 조동익과 ‘어떤날’이라는 팀을 꾸려 내놓은 데뷔 음반은 아직도 회자된다. 전문가들은 가요사를 정리하며 명반 순위를 매길 때 항상 ‘어떤날’ 음반을 최상위권에 랭크시킨다.
그가 지금껏 내놓은 연주 음반들 역시 마찬가지다. 89년 1집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부터 5집 ‘흡수’까지, 매번 찬사를 받았다. 그가 없었다면 우리 음악은 지금보다 많이 얄팍했을 것이다.
그의 골수팬이라면 영화음악이나 공연에만 전념하는 이병우의 행보에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다. ‘흡수’가 나온 2003년 이후 8년 넘게 이병우의 개인 음반은 감감무소식이다.
“저를 오랫동안 좋아해주신 분들은 이런 말씀을 많이 하세요. ‘이병우가 너무 대중적으로 가는 거 아니냐.’ 그런데 저는 중년이 돼서 그런지 생각이 달라요. 사람들을 우울한 감상에 젖게 만드는 음악보단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음악이 좋은 음악 아닌가 싶은….”
이병우는 6집을 언제 만나볼 수 있는지 묻는 질문에 “아시다시피 제가 시간이 없다”고 답했다. 그런데 대화가 계속되자 “내년엔 내고 싶다”고 하더니 결국엔 “내년엔 낼 것이다”고 말했다.
기타를 향한 사랑이 대단한 만큼 그가 요즘 에너지를 쏟는 분야 역시 기타와 관련된 것들이다. 지난해 직접 개발해 현재 시판 중인 (울림통이 없는 기타인) ‘기타바’가 대표적이다. 기타바는 등을 구부린 상태에서 연주하는 기타와 달리 자연스럽게 몸을 꼿꼿이 세우고 칠 수 있도록 고안됐다.
“기타바를 써본 분 중엔 (몸통이 없는 만큼) 연주하기 불편하다고 말하는 분도 있어요. 그런데 제가 평생 기타를 치며 절실하게 느낀 건 자세가 정말 중요하다는 거예요. 몸에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 기타 연습을 오래 할 수 있는 악기가 기타바예요. 언젠가 많은 분들이 기타바의 중요성을 알게 되실 거라고 생각해요.”
이병우는 내년부터 일반인들을 상대로 직접 기타 레슨을 해주는 마스터클래스도 진행할 예정이다. 마스터클래스를 여는 이유는 두 가지. 첫째는 자신의 음악을 사랑해준 팬들에 대한 보은의 의미이고, 둘째는 기타를 좀 더 쉽게 익힐 수 있는 방법을 전파하기 위해서다. 기타바와 마스터클래스가 모두 안착한다면 이병우의 기타 예찬론에 공감하는 사람 역시 많아질 수도 있겠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