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CSI’ 김일평 해양경찰청 과학수사계장 그의 바다엔 ‘의혹’이 흐른다

입력 2011-12-16 11:06


솔직히 속이 좀 울렁거렸다. 바다 또는 연안에서 발견된 각종 시신의 형태는 기이하기까지 했다. 기자도 입사 초 사회부에서 경찰서를 출입하며 시신 사진을 여럿 본 경험이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혼자 찾아가서 부검 현장을 1시간 이상 관찰한 적도 있다. 하지만 며칠 전 김일평(54) 해양경찰청 과학수사계장이 이메일로 보내 온 익사체들의 사진은 육상에서의 변사체와 양태가 많이 달랐다. 온몸이 퉁퉁 불어 있거나 팔, 다리와 등이 구부러지고 얼굴은 이끼 같은 걸로 덮여있는 경우가 많았다. 더 자세한 묘사는 독자들에게 혹시 불쾌감을 줄지 몰라 생략한다. 어쨌든 변사체의 모습이 육상과는 많이 다르다는 점은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몇 년 전부터 ‘CSI’(Crime Scene Investi-gation·범죄 현장 수사)라는 말이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해지면서 ‘과학수사’를 상징하는 단어가 됐다. 동명의 미국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면서 빚어진 현상이다. 드라마 열풍은 몇 년 안 됐지만, 사실 CSI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그 기본 원칙은 20세기 초 프랑스의 범죄학자 에드몽 로카르(1877∼1966)가 간략한 경구로 표현한 바 있다. ‘모든 범죄는 증거를 남긴다.’ 이 경구는 모든 수사관이 기본적으로 따라야 하는 원칙이다. 그래서 무분별하게 접근하는 사람들의 부주의로 현장이 오염되지 않도록 엄격하게 조치를 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접하는 육상 경찰들과 달리, 해양 경찰들은 이 경구를 철석같이 신뢰하고 범죄 현장을 보존하기가 매우 힘들다. 범행 장소의 특성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양 경찰은 어떤 방식으로 과학 수사를 진행할까. 김일평 계장을 통해 종전 언론에 소개된 적이 없는 ‘바다 위 CSI’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그는 해양 경찰 관계자들 사이에서 ‘과학수사계의 원조이자 대장’으로 통한다. 김 계장을 12, 13일 이틀간 인천 송도동 해양경찰청 사무실에서 만났다.

현장이 없는 과학수사

“해상이나 해변에서 발견되는 시신이 한 해 평균 1000구 정도 됩니다. 적을 때는 700∼800구, 많을 때는 1200∼1300구가 바다에서 나오죠. 주로 본인 과실과 안전사고에 의한 사망이지만 자살이나 타살도 꽤 됩니다. 그런데 보통 바다에서의 사망 사건은 육지와 환경이 많이 달라요. 육지에서는 시신과 그 주변을 조사하면 범행 증거를 대부분 찾아낼 수 있어서 ‘현장이 증거의 보고(寶庫)’라는 말이 있죠. 하지만 바다에서는 현장이라는 게 그냥 흘러가는 물이고, 시신을 건져내는 순간 현장은 없어지잖아요? 그래서 증거를 찾아내기가 힘들죠.”

김 계장 설명대로 해양 경찰에게는 시체가 발견된 곳의 현장 보존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되기 어렵다. 게다가 시신 상태가 생전과 크게 달라진다. 성인의 수중 시신은 살아있을 때보다 몸무게가 보통 7.2㎏ 증가한다. 그리고 수온이나 염분의 농도에 따라 부패가 진행되면서 몸 안에 가스가 차 부풀어 오른다. 그 팽압으로 눈이 돌출하고 혀가 나오기도 한다(이를 ‘사천왕 현상’이라고 한다). 이러니 신원 확인이 힘들 수밖에 없다. 또 하나 특이점은 해양 생물들이 시신에 접근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육상에서는 칼에 맞으면 칼자국, 망치에 맞으면 망치 자국이 시신에 보이지만 바다에서는 그게 잘 보이지 않습니다. 개방된 상처에는 어떤 식으로든 해양 생물이 간섭하기 때문이죠. 길쭉하게 상처가 났는데 생물들이 그 주변을 뜯어먹으면 상처 모양이 동그랗게 변하거나 아예 없어져버려요. 또 사람 몸에 있는 지방분과 바닷물의 염분 등이 일정 시간 섞이면 몸이 비누처럼 변하는 시랍(屍蠟)화가 진행돼요. 그래서 의사들도 변사체 검시 때 제일 꺼리는 게 물에서 온 표류시신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해양 경찰의 과학수사는 육상 경찰과는 다른 기법이 필요하다. 특히 해양생물이 사체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야 한다. 가령 게와 새우 등 갑각류는 어류보다 식욕이 왕성해 사체에 가장 많은 손상을 일으킨다. 갑각류는 집게발로 잡아 뜯기 때문에 좁고 깊게 파이는 상처를 만들어 낸다. 반면 물고기는 이빨로 물어뜯어 갑각류가 만든 것보다 넓은 모양의 흔적을 남긴다. 소라·고둥 종류는 달라붙어서 빨아댄 곳에 조그만 반점을 만들고, 오징어·문어는 스푼으로 아이스크림을 떠낸 자국처럼 둥그렇게 파인 모양을 남긴다. 이렇게 해양 생물별로 사체에 어떤 손상을 일으키는지를 모르면 사체에 있는 상처가 범행으로 인해 맞고 찔린 것으로 오인하기 쉽고 수사가 엉뚱한 방향으로 향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동물이 물어서 낸 자국(animal bite mark)에 대해 국내에서는 제대로 연구된 자료가 없다. 그래서 김 계장이 직접 3년 째 관련 실험을 진행하며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고 있다.

경찰이 광어와 메기를 기르는 까닭

해양경찰청에는 ‘과학수사연구실’이라는 별도의 방이 있다. 김 계장 안내로 그곳에 들어가니 대형 수조 4개가 나란히 설치돼 있었다. 광어, 감성돔, 메기, 비단잉어들이 각각의 수조에서 평화롭게 헤엄치고 있었다. 경찰 건물 안에 웬 수족관? 횟집인가?

“수중생물 중에서도 가장 흔한 어류들이 사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한 것이죠. 사람을 넣을 수는 없으니까 대신 죽은 개나 닭, 쥐를 집어넣고 물고기들이 손상시켜가는 과정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겁니다.”

김 계장은 한 구석에 있는 냉장고에서 비닐봉지에 싸인 물체를 꺼냈다. 냉동 상태의 실험용 쥐들이다. 그 중 200g짜리 1마리를 감성돔 수조에 넣었다. 10여 마리의 감성돔은 수면에 떠있는 죽은 쥐에 처음에는 잘 접근하지 않았다. 일단 경계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한두 마리가 접근해 톡톡 치면서 입질을 하기 시작했다. 보통 1주일이면 쥐가 털도 안 남고 백골이 된다고 한다.

연구실 한쪽에는 책상 위에 여러 대의 현미경이 있었다. 고가의 실체현미경과 광학현미경이다. 김 계장은 그 중 하나의 재물대 위에 파리 한 마리를 올려놓고 대물렌즈에 눈을 가져갔다. 수중 사체를 손상시키는 생물군 중 곤충도 중요한 연구 대상이다. 김 계장이 현미경 위에 올려놓은 것은 검정파리(blowfly) 종류였다. 그는 평소에 곤충 유충(구더기)도 열심히 들여다본다. 아무데서나 굴러다니는 걸 채집하는 게 아니다. 김 계장이 집어든 조그만 비닐봉지에는 ‘포항해양경찰서, 2009년 9월 30일’이라고 쓰여 있었다. 당시 포항 화진해수욕장 해안에서 발견된 시신 속의 파리 유충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전국 해안의 시신에서 확보된 유충들을 수집해 DB를 만들고 있다.

김 계장이 현미경을 이용해 열중하고 있는 이 분야는 일종의 법곤충학이다. 법곤충학은 시신에 꼬인 특정 곤충들을 보고 피해자가 언제 죽었는지, 시신이 어디에서 옮겨졌는지 등을 밝히는 법의학의 한 분야다.

“파리 외에 딱정벌레, 나방, 개미, 벌, 진드기, 물방게 등 해변의 잡다한 곤충들이 사체에 몰려듭니다. 딱정벌레의 경우 사체에 직경 5∼8㎜ 구멍을 뻥뻥 뚫죠. 미국에서는 그런 손상을 보고 사망자가 총을 맞은 것으로 오인한 경우도 있어요. 그런 곤충들의 종류와 습성을 잘 파악하면 사망 장소, 사후 경과시간 등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수생 동물뿐 아니라 식물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 녹조류 등 식물성 플랑크톤은 물에서 부유하다가 사체가 있으면 달라붙어 번식하는데, 그 상태를 보고 사체가 물 속에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바다에서 죽었는지 강에서 죽었는지 등을 유추할 수 있다.

중국 선장에 피살된 이청호 경사 검시

김 계장을 한창 인터뷰하던 12일 오후, 그는 외부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과학계장입니다. 예. 예. 현장이 어디에요? 경찰서에 중국인이 와 있어요? 아직 손 안 씻겼죠? 혈흔 채증해야 합니다. 그럼 내가 갈게요.”

김 계장은 감식가방과 카메라 등을 갖춰 황급히 출동 준비를 했다. 당일 오전 서해 소청도 앞바다에서 불법 조업을 하던 중국어선을 상대로 나포 작전을 진행하다 특공대원 이청호 경사가 중국인 선장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 그런데 중국인 선장이 범행 사실을 부인하고, 흉기도 깨진 유리조각인지 뭔지 확실치 않자 김 계장이 급히 호출된 것이다.

김 계장은 우선 인천 북성동 인천해양경찰서에서 이 경사의 시신 사진을 본 뒤 “이건 유리가 아니라 칼에 맞은 것 같다”고 하면서도 다소 미심쩍어했다. 사진 상으로는 사인이 불명확했다. 그는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중국인 선장의 손톱을 다 깎고 혈흔과 DNA를 채취토록 경찰서 측에 지시한 뒤 이 경사의 시신을 직접 보기 위해 인천 신흥동 인하대병원으로 이동했다. 시신안치실에서 검사 입회 하에 이 경사의 옆구리 상처를 유심히 살피던 김 계장은 말했다.

“유리가 아니라 편인기(片刃器·한쪽에만 날이 있는 칼)에 맞았어요. 나포 작전 때 강철로 된 방검복(防劍服)을 착용했지만 하필이면 옆구리 이음새 사이로 칼이 들어온 것이죠. 이쪽이 칼날, 반대쪽이 칼등이 들어온 자국입니다. 상처의 세로 길이가 3.5㎝이지만, 실제 칼날의 폭은 1.5∼2㎝ 정도일 수 있어요. 중국인이 찌르면서 칼을 한 번 비튼 흔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흉강에 꺾인 흔적이 보여요. 본인이 의도적으로 손목을 돌린 건지, 아니면 미끄러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칼이 똑바로 들어갈 때보다 상처가 커졌습니다.”

김 계장은 ‘실리콘 건’을 꺼냈다. 치과에서 이빨 본을 뜰 때 쓰는 총 모양의 기구인데, 김 계장은 시신의 상처 본을 뜰 때 활용한다. 그는 실리콘을 이청호 경사의 상처 속에 주입하고 압착시킨 뒤 5분 정도 지나 실리콘이 굳자 빼냈다. 그는 주변 경찰 후배들에게 말했다.

“이런 상처가 있으면 오늘 내가 한 것처럼 본을 떠야 한다. 이게 법정에 가서 산증거가 된다. 나중에 부검하고 나면 이 상처가 원 모양대로 안 남아. 이런 걸 잘해야 해. 요새는 증거제일주의니까.”

김 계장은 이 경사의 몸에 있는 0.5㎜ 크기의 미세한 유리 파편도 발견하고 테이프에 붙여 채증했다. 30여분에 걸친 검시를 마친 뒤 김 계장은 말없이 누워있는 망자의 어깨를 붙잡고 새삼 안타까운 듯 혼잣말을 했다. “잘 가라…. 좋은 데로 가….”

미쳐야 미친다

김 계장은 1998년 군산해양경찰서 형사계장을 맡아 부임 첫 해에 4건의 살인사건을 해결하면서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해양경찰청이 설립된 이래 최초로 발생한 선상 강간살인사건을, 남들이 다 자살이라고 추정할 때 타살이라고 판단해 결국 범인을 잡았다. 그 뒤 한 달 만에 다시 시신이 없는 상황에서 뱃머리에 떨어진 직경 5㎜짜리 핏자국만을 근거로, 한 어부의 동료 살해 자백을 받아냈다. 여름철 해안에서 변사체가 많이 발견될 때는 충남 서천에서 전북 고창까지 하루에 일곱 군데의 사건 현장을 누비기도 했다.

1년에 평균 1000구의 시신이 해상에서 발견된다고 하지만, 사실 정확한 숫자는 아무도 모른다. 물 밑에 얼마나 가라앉아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물 속의 사체는 부패로 인해 복부에 메탄, 이산화황 등 가스가 차면서 풍선처럼 수면 위로 올라온다. 체중의 최대 22.4배의 부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가해자가 사체에 30㎏짜리 돌을 매달아도 떠오른다. 이른바 ‘표면 부상’이다. 그런데 수온이 섭씨 3도 이하이거나 수심이 30m 이상일 때는 부상이 안 된다. 3도 이하에서는 박테리아가 증식을 못 해 부패가 잘 이뤄지지 않고, 30미터를 들어가면 3t 정도의 수압이 작용해 사체를 내리누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는 바다가 낭만의 대상이겠지만, 김 계장에게는 망자들의 혼이 떠도는 곳으로 인식된다. 그는 지금까지 자기가 접한 시체가 몇 구인지 셀 수도 없다. 필설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사례도 많았다. 그는 좋아서 이 일을 하는 걸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인데, 그 누군가가 저라는 걸 신이 준 큰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엔 역겨웠죠. 그러나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이에요. 시신을 만졌을 때 살이 뭉그러질 정도로 부패되면 그 냄새는 말로 표현이 안 될 정도로 고약합니다. 하지만 저는 쉽게 생각하죠. 아이고, 누가 찐 계란을 많이 먹고 방귀 뀌었네. 그러면 견딜 만합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안전사고이든 자살이든 타살이든, 사인을 밝히고 유족을 찾아주는 게 저희들의 도리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이 ‘불광불급(不狂不及)’이에요.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제게 부여된 일을 그렇게 해야죠.”

수산학과 과학수사에 대한 2개의 석사 학위를 갖고 있는 그는 현재 ‘수중생물이 표류시체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주제로 박사 논문을 준비 중이다.

김호경 기자 hk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