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라의 수다] 명품과 Made in Korea
입력 2011-12-15 18:03
서울 용산 해방촌에 위치한 ‘슈즈 런칭 바이 엠’의 쇼룸에 들어서니 골동품 재봉틀, 가장자리가 다 해진 옛날 이탈리아 남성잡지, 학생구두, 신사화, 부츠 견본이 즐비하게 진열돼 있어 마치 시대를 거슬러온 느낌이 든다. 남자친구는 우연히 그 쇼룸을 발견하고 나중에 거기 가서 구두를 맞췄다.
‘슈즈 런칭 바이 엠’은 한국에서 남성용 맞춤구두를 생산하는 브랜드로 서울패션위크에 참가하고 유수 디자이너들과 협업을 할 정도로 성공한 브랜드다. 그런데 직접 디자이너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정이 좀 달랐다. 한국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이 너무 인기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그 디자이너뿐 아니라 다른 젊은 패션디자이너들도 똑같이 느끼는 문제이다. 꼭 디자이너가 아니더라도 시내 백화점에 들어가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매장 직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듯 ‘고품질’과 동의어로 여겨지는 제품은 대개 ‘수입품’이다.
그러나 이른바 명품을 생산하는 외국 기업이 일하는 방식과 공장의 생산조건을 조금이라도 접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유명 브랜드 제품이라고 해서 꼭 한국산 수제품보다 질이 좋으라는 법은 없다. 유럽에서 들어오는 명품 중에는 윤리적, 환경적 측면에서 볼 때 이름값을 하지 못하는 제품도 적지 않다. 유럽산이라고 하면 저임금 국가인 불가리아나 루마니아에서 만들어진 것이 태반이고, 그밖에는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 생산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곳의 노동자들은 턱없이 낮은 임금과 말도 안 되는 노동조건에 시달리고 있다. 미얀마처럼 무역이 봉쇄된 국가에는 제3국의 중간상인을 통해 물건을 들여보내기도 한다.
몇 달 전 뉴스에서 외국산 사치품은 불티나게 팔리는 반면 기부나 자선활동은 극히 미미하다는 보도가 나왔다. 분명 윤리적, 사회적 측면에 문제가 없지 않은데 왜 한국인들은 그토록 수입명품에 열광하는 것일까?
내 생각에 한국인이 독일제 자동차, 프랑스제 가방, 이탈리아제 구두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 브랜드가 주는 과시효과 때문이다. 아무리 시골이라도 유명브랜드 로고를 모르는 한국인은 없다. 정말 그 물건의 품질이 좋은지, 광고된 내용에 합당한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지나가는 사람이 ‘아, 그 비싼 물건이구나!’하고 알아보면 그걸로 목적달성이다.
물론 내 추측일 뿐이지만 사실 그런 생각이 들게끔 하는 요소도 많다. 예를 들어 한국인이 좋아하는 명품가방은 국제무대에서 새로운 ‘잇 백(it bag·패션용어로 인기상품)’으로 주목받는 가방이라기보다는 로고가 커서 ‘아, 그 가방!’하고 금방 알아볼 수 있는 가방이다. 하지만 꼭 그렇게 많은 개인정보를 흘리고 다녀야 하는 걸까? 내가 가방과 구두에 돈을 얼마나 쓰는지 길 가는 사람이 한눈에 보고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데 어딜 가나 명품가방과 디자이너구두가 넘쳐나고 돈 많은 걸 내보이고 싶어하는 사람 천지다.
물론 쇼핑은 각자의 취향이고 선택이다. 이제까지 명품브랜드를 접하면서 의심스러운 점이 많았음에도 나 또한 독일 자동차, 프랑스 가방, 이탈리아 구두를 선택해야 할 근거가 충분함을 인정한다. 그러나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을 구입하는 행위는 단순히 쇼핑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디자이너들의 창의성과 정성어린 수작업, 질 높은 고객서비스를 후원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베라 호흘라이터(tbs eFM 뉴스캐스터)
번역 김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