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슬픔은 같은 길을 함께 달린다” 다큐 영화 ‘오래된 인력거’ 이성규 감독

입력 2011-12-15 18:03


인터뷰하면서 우는 남자는 처음 봤다. 맨발로 인터뷰하는 사람도 첨 봤다. 그는 인터뷰하며 만난 사람 중 양말 안 신고, 우는 유일한 남자였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이 ‘맨발’과 ‘눈물’이라는 두 단어만큼 이 남자의 인생을 쉽게 설명하는 말도 없을 것 같다. 그는 중학교 졸업 후 서울 구로의 한 볼펜 공장에서 일을 했고, 늦깎이 대학생이 되었다. 학생 운동과 학업 사이에서 방황하는 청춘을 보냈고, 졸업 후 한참 뒤에는 방송사와 외주제작사 간의 불공정한 관행을 깨겠다며 독립PD협회 초대 회장이 돼 방송사에 온갖 독설을 날리다 방송 일을 거의 접었다.

현재는 주로 영화 연출만 하는데 고집은 어찌나 센지, 인도 등 저소득 국가에서 촬영할 때면 현지인과 똑같이 먹고 자야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며 사서 고생을 한다. 그러다 말라리아, 뎅기열, 히트알러지란 희귀병, 열대성 급성 이질에 걸려 수차례 죽을 고비 넘겼다. 10년에 걸친 오지 촬영 현장에선 현지인들이 먹는, 석회질이 함유된 물을 마시다 치아가 녹아내려 현재 이가 하나도 없다. 48세인 이 남자는 현재 틀니를 끼고 있다며, 씩 웃는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란 질문에 지체 없이 “겁대가리가 없는 사람”이라고 답하는 이 사람. 마초, 거친 남자처럼 보이다가도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울어버리는 이 남자는 ‘어른 아이’ 같다.

이 어른 아이는 지난해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IDFA) 장편 경쟁 부문에 아시아 국적으로는 최초로 진출한 이성규 감독이다. IDFA는 세계 양대 다큐멘터리 영화제 중 하나이지만 유난히 아시아 감독들에게 장벽이 높았다. 이 감독의 ‘오래된 인력거’는 인도 캘커타 시내를 누비는 인력거꾼 ‘샬림’과 그의 친구들의 삶을 기록한 영화다. 촬영하는 데만 10년이 걸린 이 영화는 15일 개봉했다. 상영관은 고작 11곳. 그마저도 오전 상영이 대부분이다. 이 감독은 그래도 ‘크크’, 웃으며 농담을 한다.

-개봉 전날 시간을 뺏어 미안하다(이 감독과의 인터뷰는 개봉 전날인 14일 이뤄졌다.)

“괜찮다. 촬영 때는 바쁘다가도 개봉 전의 감독은 백수건달이다(웃음). 관객이 올까, 안 올까 초조하다. 걱정한다고 관객이 오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친구 샬림은 이 영화를 보았나. 영화에서 아내의 병원비 때문에 우는 샬림을 다독이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인도인 영화 스태프가 샬림에게 DVD를 보여줬다. 전화를 했더니 많이 울더라. ‘네가 나의 이야길 들어주고, 영화를 만들어줘 고맙다’는 게 첫 마디였다. 샬림은 1999년 인도를 방문했을 때 캘커타의 ‘서더 스트리트’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 이후에 오다가다 인사하는 사이가 됐고, 점점 친해졌고, 자연스럽게 카메라로 찍기 시작했다.”

-영화의 주제가 여러 가지인 것 같다. 표면적으론 13명의 아이들과 아픈 아내를 짊어진 가장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그 안에는 계급 사회의 부조리가 엿보인다. 이 모든 주제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가난’이다. 풍요의 시대에 가난을 말하는 게 어떤 의미일까.

“풍요의 시대면서 동시에 양극화가 심각한 신자유주의 시대에 살고 있으니 상대적 가난이란 건 여전히 존재하는 것 아닌가. 1997년 위환 위기 때 이런 경험을 처음 했는데 그때 처음으로 나도 거지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어느 날 갑자기 외주제작사가 망해 직장을 잃었고, 주머니에 100원이 없어 주인 집 김치를 몰래 훔쳐 쌀과 김치만으로 한 달 넘게 연명했다. 공포였다. 끔찍했다. 아버지라고 하는 가장들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도 그때다. 잃어버린 가장에 대한 ‘노스탤지어’, 그게 이 영화다.”

-어떤 창작물이든 결국은 창작자의 경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 같다. 아버지에 대한 강한 추억이 이 영화를 만든 계기가 됐을 것 같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극장에서 매점을 하셨다. 그땐 생활이 괜찮았다. 지금처럼 의료보험이 없던 시절 천식 등 각종 질병을 안고 내가 태어났는데, 어린 나이에도 기침 한 번 할 때마다 기둥뿌리가 하나씩 뽑히는 느낌이었다. 병원에 한 번 가면 2만원, 3만원씩 들었다. 당시로선 공무원 월급에 해당하는 큰 돈이었다. 아버진 점점 돈을 까먹다 보따리 장사와 막노동을 했다. 좁은 방에 잔다고 누웠는데 부모님이 돈 걱정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다. ‘내일 병원 가야 하는데 돈은 어떡하지.’ 이런 소릴 들을 때면 이불 뒤집어쓰고, 이불 속에서 소리 안 내려고(그는 이 부분에서 참다 눈물을 흘렸다), 그러다 얼마나 울었는지. 우리 집이 바로 나 때문에 가난해졌구나, 그런 어린 시절의 기억이 너무 강하다.”

-인도 빈곤의 상징인 인력거꾼들을 그렸지만 영상미는 매우 뛰어나다.

“영상이 아름답다는 건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한 신비이기도 하다. 서울역 부랑자의 삶을 아무리 열심히, 아름답게 찍어도 사람들은 아름답게 보지 않을 거다. 관객이 피사체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과 편견, 이미지가 감독의 메시지와 부딪혀서 몰입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인도라는 공간은, 관객이 모르는 타자들의 세계이기 때문에 오직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게 해 주는 것 같다. 영상미 측면에서도 그렇고.”

-한때 서구인들이 동양의 문화를 낭만적으로, 이국적으로 해석하는 데만 그쳤다. 이 영화 역시 제 3세계의 고통과 가난을 미화했다는 비판의 여지가 있을 수 있겠다.

“비슷한 질문을 받은 적 있다. 솔직하게 인도에 대한, 또 다른 ‘오리엔탈리즘’이라는 고백을 했었다. 영화는 소통하기 위한 건데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면 관객은 보지 않는다. 의료계 비리 폭로한 다큐멘터리 ‘하얀 정글’, 맛집 소개 프로그램의 비리를 폭로한 ‘트루맛쇼’도 인터넷 반응은 뜨거웠지만 관객은 많이 들지 않았다. 1999년 인도에 가서 카스트(신분제도) 학살을 적나라하게 찍었는데 그 영화(‘보이지 않는 전쟁’) 관객이 얼만 줄 아나? 500명이었다. 관객은 방송, 고발 프로그램을 통해 적나라한 현실을 알고 싶지, 영화관에선 감동과 감정 이입을 원한다. 또 다른 오리엔탈리즘으로 비판할 수 있다. 그런 부분을 인정한다.”

-그걸 ‘부끄러운 타협’이라고만 단정할 수 있을까. 영화는 관객에게 무엇을 줘야 하냐에 대한, 고민의 결과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건 사람마다 해석하기 나름인 것 같다.”

-영화 ‘시티 오브 조이’에서 간호사 조안 바실이 미국인 의사 맥스에게 이런 말을 한다. “삶엔 세 가지 방식이 있어. 도망치든가, 방관하든가, 부딪치든가.” ‘오래된 인력거’ 영화 블로그에선 이런 대사를 인용해 각각의 캐릭터를 설명한다.

“편집 초기엔 샬림은 부딪히는 자, 모하메드는 방관하는 자, 마누즈는 도망치는 자로 캐릭터를 설정했었다. 그 중 한 명이 치매에 걸렸고, 2차 편집부턴 마누즈와 샬림, 투 톱 체제로 바뀌었다. 마누즈는 어린 시절 지주에 의해서 아버지가 살해당하는 걸 목격한 뒤 마음을 열지 않는 청년이 된다. 아버지를 죽인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하겠냐고 물으니, 그저 도망치겠다고 답하더라. 체념해라, 덤비지 말라고 교육 받은 사람들의 공포가 남아 있는 거겠지.

어쩌면 그가 80년대 대학을 다닌 나와 비슷하다고도 느꼈다. 학생 운동의 전성기를 지난 때였다. 당시 학내에서 단식 투쟁을 했는데 3일 만에 어머니가 오셔서 ‘너 안 나오면 뛰어 내리겠다’며 난간에 매달리셨다. 결국 농성장에서 나왔고, 그때 느낀 패배감이 너무 컸다. 아버지는 공부해서 너만은 제대로 된 직장에 가라고 하셨고, 난 그 시절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경계인이었다.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삶의 모토가 좀 바뀌었다. 저지르고 보자는 쪽으로(웃음). 넘어지면 툭툭 털고 일어나면 되니까. 아예 시작조차 안 하는 것보단 그게 낫지 않나.”

-인도에서 영화와 방송용 다큐멘터리를 여러 편 찍었다. 위험한 순간도 많았을 것 같다.

“2000년 인도 현지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현상수배범으로 실려 거리를 다니는 것조차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촬영 현장에선 현지 경찰과 충돌하여 소총이 내 목구멍 안으로 들어 온 적도 있고. 2006년엔 인도 출입국 관리법 위반이란 딱지가 붙어 감옥에서 닷새를 보냈다. 각종 풍토병 때문에 병원 간 건 셀 수가 없다. (바지 밑단을 조금 들어올리며) 다리에도 벌레들이 물어뜯은 상처가 가득하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런 일들이 전혀 고통스럽지 않고, 매우 즐겁다는 거다.”

토레 쿠쉬 토리 검(조금은 행복하고 조금은 슬픈 것이 삶이다). 영화 속 샬림이 자주 하는 말이다. 행복한 사람, 슬픈 사람을 모두 태우고 달리지만 이들 모두 같은 길 위에 있다고 샬림은 고백한다. 70도의 지열(地熱)을 견디며 캘커타 시내를 뛰는 맨발의 샬림은 꿈을 향해 쉼 없이 달리지만 행복의 목전에서 ‘인생 지뢰’를 밟고 휘청거린다. 영화는 삶의 비극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나지만, 관객은 엔딩 크레디트를 보며 언젠간 그의 인생에도 행복이 깃들 것이란 막연한 상상을 하게 된다. 그게 이 영화의 장점이다. ‘맨발’과 ‘눈물’의 이성규 감독은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보게 하는 영화를 만들었다. 조금 행복하고, 조금 슬픈 것이 삶이니 그대, 너무 울지 말기를.

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