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론 보이스피싱 활개치는데… 카드사 “난 몰라”
입력 2011-12-14 21:24
“아버지께서 보이스피싱을 당한 충격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지난 3일 인터넷 ‘보이스피싱·카드론 대출 피해자 소송모임’ 카페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카페는 순식간에 애도의 글로 뒤덮였다. 목숨을 잃은 사람은 경기도 성남시에서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던 최모(64)씨. 우체국을 사칭하는 보이스피싱 전화에 평소 쓰지도 않던 신용카드에서 총 5000여만원이 카드론으로 빠져나갔다. 위암 수술을 받은 지 1년도 안 된 최씨는 월급 100만원에 재산이라곤 살고 있는 집 한 채가 전부였다. 5000여만원의 빚은 감당하기 벅찼다.
금융당국이 잇따라 보이스피싱과 카드론 피해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이를 비웃듯 피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피해자모임 카페에 올라온 피해 사례만 이달 들어 50여건에 이른다. 자책과 빚 고민에 빠진 사람, 카드사 추심에 유산한 사례를 비롯해 자살충동과 대인공포증, 우울증, 공황장애, 가정불화를 겪고 있다는 호소가 끊이지 않는다.
1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금까지 개별 접수된 카드론 보이스피싱 민원만 235건에 이른다. 벼랑 끝에 몰린 피해자들은 스스로 구제방법을 찾아 전방위로 뛰고 있다. 피해자 대표단은 15일 금감원을 찾아 진정서를 제출키로 했다. 진정서 제출만 두 번째다. 진정인 934명의 피해금액은 200억원에 이른다.
피해자들은 신용카드사가 본인 확인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채 카드론 대출 한도를 올려주고, 대출을 승인해준 것이 피해액을 키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카드사를 상대로 집단소송도 제기했다.
또 카드론 승인 절차가 허술했던 만큼 카드사에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9일 금감원은 신용카드사에 신규회원 가입 시 카드론 서비스 사용 여부를 반드시 묻고, 기존 회원에게도 이달 말까지 카드론 서비스 차단 여부를 확인하도록 했다. 카드론 신청도 상담직원이 본인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확인한 뒤 승인하도록 했다. 그동안 카드론 보이스피싱에 고스란히 노출됐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조치다.
여기에다 피해자들은 카드사의 대응에 또다시 고통을 받고 있다. 카드사는 분할 상환, 이자면제 정도만 해주고 있다. 그나마도 “일단 채무를 인정해야 이자를 면제해준다”, “일부를 갚으면 나머지는 분할 상환하게 해준다”며 압박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지난 12일부터 국회 정무위원 홈페이지를 일일이 찾아 대책을 호소하는 글을 릴레이로 올리고 있다. 그동안 4차례에 걸쳐 서울 여의도 금감원, 국회 앞에서 가진 집회도 계속할 예정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최근 점검 결과를 보면 카드사들의 카드론 한도 상향과 승인 절차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분쟁조정 방법을 모색 중이며 소송과 관련해 법원의 요청이 있으면 점검 결과를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황세원 기자 hws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