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조작 자식 죄 씻길수만 있다면…” K리거 부모들 ‘아름다운 속죄’

입력 2011-12-14 21:22


“자식 대신 속죄합니다. 비록 아이들이 축구계에서 퇴출됐지만 사회에서까지 버림받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프로축구 K리그 승부조작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전직 선수의 부모들이 속죄하는 마음으로 봉사모임 ‘축구와 등불’을 만들어 3개월째 활동해오고 있다. 회원은 모두 16명이고, 활동비용은 회원들의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5만∼10만원씩 보태고 있다.

권모 전 선수의 아버지(58)를 비롯한 부모 10명은 14일 오후 2시 경남 창원교도소 주변에서 쓰레기를 주웠다. 창원교도소에는 승부조작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0개월∼2년형을 선고받은 전직 축구선수 12명이 복역하고 있다.

이들 중 8명의 부모들은 서울, 인천, 김포, 속초 등에 각각 흩어져 살고 있지만 9월 말 수감된 자식들을 잠깐이라도 보기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교도소를 찾고 있다. 5명의 부모들은 아예 교도소 인근에 원룸을 얻었다. 나머지 부모들은 매번 대여섯 시간 차를 타야 하는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일주일에 3∼4일씩 창원까지 내려온다.

이들은 자식들 면회가 끝난 뒤 모여 장애인 복지시설을 방문하거나 거동이 어려운 장애인 돌봄서비스, 불우이웃 밑반찬 만들어주기 등의 봉사활동을 꾸준히 펴고 있다.

창원시 북면의 장애인 복지시설 관계자는 “지난 주말 ‘축구와 등불’ 글자가 적힌 노란색 조끼를 입은 중년 남녀 9명이 찾아왔다”면서 “라면과 먹을거리를 잔뜩 전달한 뒤 복지시설 주변에 쌓인 쓰레기와 낙엽을 치우고 잡초를 뽑더라”고 전하면서 고마워했다.

‘축구와 등불’의 봉사활동은 10월 초 마산회원구 회원동사무소와 마산합포구의 한 노인복지시설에 5㎏짜리 김치 50상자씩을 기탁하면서 시작됐다. 지난달에는 고성군의 아동복지시설을 찾아 라면, 쌀, 과자를 기탁했다. 이달 초에는 김치를 전달한 노인복지시설에 다시 찾아가 명란젓, 오징어순대 등의 밑반찬을 직접 만들어 어르신들 상에 올렸다. 이 모임의 회장인 권씨는 “아이들이 수감된 상태에서 봉사활동을 하려니 참으로 조심스럽다”며 “자식들의 죄가 조금이라도 씻길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말했다.

창원=글·사진 이영재 기자 yj311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