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총격’… 피로 얼룩진 유럽

입력 2011-12-15 00:58

지난 7월 노르웨이 연쇄 테러범의 무차별 난사사건이 채 잊혀지기도 전에 유럽 내 벨기에와 이탈리아 도심 한복판에서 13일(현지시간) 또다시 ‘묻지마 살상극’이 벌어졌다.

AP통신은 이날 이탈리아 토스카나주(州) 피렌체의 달마치아 광장 한 건물 지붕 위에서 잔루카 카세리(50)라는 극우 인종차별주의자가 세네갈 출신 흑인 노점상을 향해 총을 난사해 2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고 보도했다. 경찰 추적을 피해 달아난 그는 2시간 뒤 산로렌초 시장에서 또 아프리카계 노점상 2명을 향해 총을 쐈다. 이들은 중상을 입었다. 이후 카세리는 인근 지하주차장에서 머리에 총을 쏴 곧바로 자살했다.

판타지류 소설가였던 카세리는 극우단체 ‘카사 파운드’에 소속돼 그간 관련 시위에 참가해 왔다. 이에 이번 사건은 인종 증오에서 비롯된 참사라고 현지 언론들이 분석했다. 조르지오 나폴리타노 대통령도 “야만적인 범죄 행위”라며 “개방과 연대라는 오랜 전통을 되찾기 위해 힘을 합치자”고 호소했다. 마테오 렌치 피렌체 시장도 “범인은 머리가 텅 빈 미친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비난했다.

세네갈 출신 이민자 300여명은 사건 직후 분노의 거리 행진을 벌였다. 이번 사건은 지난 7월 노르웨이 우토야섬에서 극우주의자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비크(32)의 폭탄 공격과 총기 난사로 77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이후 불과 5개월 만에 일어난 일이다. 11월엔 독일에서 극우주의자 3인조가 11년간 터키인 등 10명을 죽인 일명 ‘케밥 살인사건’도 있었다.

극우주의자의 극단적 행위로 이탈리아 전체가 술렁이자 경찰은 14일 유대인 등을 대상으로 테러를 모의한 혐의로 수도 로마에 본거지를 둔 극우주의자 그룹 회원 5명을 체포하고, 10대 한 명을 포함한 16명을 연행해 조사했다.

앞서 13일 벨기에 리에주시(市) 버스정류장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으로 현지 시민은 충격에 빠졌다. 시는 14일 정오를 묵념의 시간으로 정하고 희생자에게 애도를 표했다. 벨기에 정부는 국가 애도의 날을 정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총기난사 사건에 따른 사망자는 생후 17개월 아이와 15, 17세 소년 등 3명으로 파악됐다. 부상자도 약 120명이다. 범인 노르딘 암라니(33)는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다리 위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현지 검찰은 “그는 머리에 총을 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파악됐다. 자신의 행동을 설명할 어떤 메시지도 남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지 언론은 그가 범행 전날 아내에게 돈을 입금한 뒤 ‘사랑한다. 행운을 빈다’는 문자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과거 20여 차례 범죄 혐의로 조사를 받고 수감생활을 했던 암라니는 성범죄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으러 가는 길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구속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무차별 테러를 저질렀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암라니의 집 창고에서는 이웃집 여성 청소부(45)의 시신이 발견됐다. 검찰은 암라니가 범행 당일 오전 그녀를 유인해 살해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아진 기자 ahjin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