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전 여는 사진작가 강상규 카메라 렌즈에 영성을 담다
입력 2011-12-14 17:59
빈곤과 혼돈이 한국사회를 휘감고 있던 1960년, 대구의 한 청년은 엉뚱한 꿈을 품었다. 사진을 찍고 싶다는 꿈이었다. 먹고살기 힘든 시절에 그게 가당한 일인가. 하지만 그 자신도 어쩔 수 없었다. 사진의 매력이 도무지 그를 그냥 놓아두지 않았다. 기어코 그는 자신의 카메라를 장만하고야 말았다. 그는 그 길로 사진 찍는 일, 아니 사진으로 작품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나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로 바뀐 지금 그는 그 일을 계속하고 있다. 사진작가 강상규(75)씨.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오리의 소위 가창댐 계곡에 동제미술관과 함께 사진영상연구원을 만들어 마지막 열정을 쏟고 있는 그를 찾았다.
“겨울이 시작되면 저녁노을이 유난히 붉게 타오릅니다. 그 속에서 펼쳐지는 풍경이 참 아름답죠. 요즘 그걸 감상하는 재미로 지냅니다. 고요함 속에서 산과 물, 나무와 꽃, 심지어 바람까지 온갖 자연이 뭔가를 속삭여줍니다. 그러면서 사랑과 감사를 가르쳐준답니다. 요즘은 마음속에서 사랑과 감사가 새록새록 솟아나죠.”
사진은 나의 삶 나의 신앙
어떻게 지내냐는 인사성 물음에 강씨는 다소 현학적이면서 의미심장한 답을 내놓는다.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고 있다는 답으로 일단 해석해본다. 그리고 지금까지 사진작가로 걸어온 여정에 대한 가슴 뿌듯함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친 김에 바로 ‘작가에게 사진이란 무엇인가’ 하는 핵심적인 질문을 던졌다.
“사진은 내 삶입니다. 사진은 내 육체이고 정신인 거죠. 허다한 사람들이 사진을 취미나 직업으로 삼고 있지만 나는 시작하면서부터 나의 모든 것을 사진과 함께했죠. 하면 좋고, 안 해도 그만인 게 아니라 기필코 해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있습니다. 사진은 내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피사체, 즉 자연과 세상을 통해 그분의 형상을 느끼게 하고 끊임없이 나 자신의 한계를 깨닫게 하셨으니까요.”
기다렸다는 듯 즉답이 나왔다. 역시 이해하기 쉽지 않은 답이다. “하나님은 만물 속에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깨달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해 놓았다”는 보충설명을 듣고서야 좀 이해가 됐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보이지 않는 대상을 지각하고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는다는 뜻이리라. 영혼의 감성으로 세상을 대한다는 뜻이리라.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들에는 스토리가 담겨 있다. 짙은 서정성과 함께 신비감이 묻어난다. 그의 사진 속에는 관념과 철학이 들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갤러리에 걸린 여러 작품들을 보면서 문외한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다.
“피사체를 아무 생각 없이 카메라에 담아서는 사진으로 감동을 전할 수 없습니다. 그 피사체가 전해주는 내밀하고 은밀한 느낌을 사진 찍는 사람이 공유하고 교류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사진작가는 끊임없이 다니면서 찾고 느끼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실제로 그는 엄청난 거리를 다녔다. 여건만 되면 카메라를 메고 한국을 넘어 전 세계를 유랑했다. 그러다 보니 숱한 에피소드가 생겼다. 자신이 원하는 한 컷을 만들기 위해 태국의 치앙마이 정글에서 원주민들과 사흘을 지내기도 했고, 뉴질랜드 설산에선 조난을 당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일찌감치 사진계에서 인정을 받았다.
“내 카메라를 장만한 뒤 렌즈를 통해 본 세상과 만물은 그야말로 신비였습니다. 다른 공부를 하고 있었지만 자나 깨나 사진에만 집착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한국 최초의 사진평론가인 구왕삼 선생님을 만나 체계적인 공부를 하게 됐죠. 지금 생각하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63년 그는 ‘사진작가 강상규’로 데뷔하게 된다. 미국의 ‘US 국제 카메라 콘테스트’에 ‘눈길의 아베크’를 출품, 6위로 입상했다. 이듬해 일본 후지 국제사진 콘테스트에서 ‘즐거운 부부’로 3위, 66년 동아국제사진살롱에서 ‘설목’으로 동상에 오른 뒤 71년 국전 사진부문에 ‘북악설경’을 출품, 당당히 대상을 차지했다. 전국의 사진작가들 사이에서 ‘강상규는 실력파’라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카메라 메고 전 세계 유랑
70년대 중반부터는 후진 양성에도 나섰다. 그러던 중 80년 대구미래대학(당시 대일실업전문대)에 사진학과를 신설, 초대 학과장을 맡아 본격적으로 사진학도들을 키웠다. 중앙대 신구대에 이어 국내 세 번째 사진학과다. 그 자신이 직접 교육과정과 커리큘럼을 만들었다. 학과 안에 사진문화연구소를 세우고 사진 논문집도 5권이나 냈다. 2001년 정년퇴직한 뒤에는 5년 동안 명예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리고는 사진계 인사들과 힘을 모아 테마전을 열고 작품집도 만들었다. 76년 한국 최초로 한국사진사를 직접 발간하고, 2002년 한국사진작가협회 40년사를 집필한 것도 그의 공적이다.
“50년 사진 인생에서 세 차례 테마전을 한 것 같습니다. 그중 96년에 ‘천지창조’라는 타이틀로 연 전시회가 대표적입니다. 신앙인으로서 세상에 뭔가 메시지를 전하고자 무려 10년을 준비해서 열었죠. 성경을 바탕으로 했는데 의외로 기독교계 밖에서도 호응을 보였습니다.”
실제로 천지창조라는 테마에 등장하는 사진들을 본 느낌은 어떻게 형용키 어려웠다. 창세기, 태초의 환, 우주의 생성, 사계절, 에덴동산 그 후, 지구촌 안식의 날 등 소제목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테마전이다.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때론 심오한 분위기에 머리를 숙이게 되고, 때로는 기쁨으로 환호케 된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섬뜩한 기운이 느껴지는 장면도 있다.
어쨌든 작품 하나하나에 엄청난 공을 들인 흔적이 보인다. 그는 이 테마와 관련한 작품을 만들면서 전에 없이 많은 기도를 했다고 한다. 한 예로 무지개 사진을 찍기 위해 뉴질랜드로 건너가 “하나님, 노아의 홍수 이후에 보여주신 무지개를 보여주세요”라고 몇 날을 기도한 끝에 작품을 만들었다. 이 테마전을 마친 뒤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류가 한층 깊어진 게 무엇보다 큰 보람이다. 일부 작품은 미술관에 전시돼 있지만 보관상 문제로 다른 곳에 옮겨 놓았다.
“내년 봄에 동제미술관 개관 10주년 기념으로 다시 한 번 작품전을 열 계획입니다. ‘천혜의 낙원’이라는 타이틀 아래 ‘가창댐 계곡의 바람길’이라는 소제목을 잡아 놓았습니다. 이곳에서 10년을 지내면서 느끼고 본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의 비밀을 표현한 작품들입니다.”
미술관·연구원에 마지막 열정
강씨는 현재 자신이 머무르는 곳 가창댐 계곡을 에덴동산이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덧칠된 가운데 신비감을 주는 주변의 경관은 낙원이라는 낱말을 떠올리게 했다. 그곳에 살면서 만든 숱한 작품 중에서 선별해 그런 곳을 마련해준 하나님과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하겠다는 것이다.
강씨는 “앞으로 얼마를 더 살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변하고 미소로 하나님 품에 안기기를 소원한다”고 말했다. 경북 김천 출신인 그는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니다 중학교 때 대구로 이사한 뒤부터는 줄곧 삼덕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그는 헤어질 무렵 “하나님께서 다시 젊게 해준다 해도 싫다”는 말을 불쑥 내뱉었다. 후회 없이 열심히 살았다는 뜻이겠다. 내년 봄에 작품전 초대장을 보내주겠다는 말과 함께 손을 흔들며 보여주는 그의 환한 웃음이 청명한 하늘처럼 맑았다.
대구=글 정수익선임기자·사진 이병주 기자 sag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