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원전 고장과 전력 비상] 전력난에도 휘황찬란한 백화점, 절전은 남의 일?
입력 2011-12-14 18:33
14일 오후 서울 명동 거리엔 잠시 서 있어도 코가 시릴 만큼 찬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문을 닫고 영업하는 매장은 10곳 중 2곳 정도에 불과했다. 너나 할 것 없이 문을 활짝 열고 온풍기와 전기난로를 틀어댔다.
열린 문으로 중국인, 일본인 관광객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가거나 나왔다. 매장 안은 춥지도 덥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였다. 하지만 그 정도를 유지하기 위해 천장에는 온풍기를, 열어놓은 문 양쪽으로는 전기난로를 두 대씩 켜놔야 했다.
화장품 매장 입구에 서 있는 직원들은 두꺼운 패딩점퍼를 입고 있었다. “문을 닫고 있으면 난방을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직원은 “문을 열고 입구에서 손님들을 끌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쇼핑을 나온 주부 김영선(41)씨는 “문을 열어 놓으니 난방을 해도 매장 안이 서늘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며 “전력이 부족해 정전이 되고 난리인데도 이렇게 나와서 보면 여전히 전기를 펑펑 쓰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백화점 외벽과 주변에 설치한 화려한 크리스마스 조명도 전력난 위기를 무색하게 한다.
롯데백화점 본점은 지난달 1일부터 외관 조명 점등을 시작했다. 본점 광장에는 지름 8m의 대형 트리를 설치했고 본점과 애비뉴엘에는 17만1760개의 LED 램프를 사용한 나뭇가지 모양의 설치물을 만들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달 11일부터 크리스마스 조명을 켰다. 백화점 외부 벽면에는 LED 전구 1만여개를 사용해 밤하늘에 은빛 은하수가 흘러가는 장관을 표현했다. 신세계백화점도 10월 말부터 일찌감치 크리스마스 조명을 켰다. 블록 1만여개에 LED 조명을 감아 본관 외벽에 늘어뜨렸다. 보통 일몰시에 점등해 오후 10시 전후로 조명을 끈다.
연말 세일 마지막 날인 지난 11일 서울시내 한 백화점 안은 고객들이 겉옷을 벗어들고 땀을 뻘뻘 흘릴 정도로 ‘찜통’이었다. 내부 온도를 정부 제한온도인 20도에 맞추기 위해 난방기와 공조기(내외부의 공기를 순환시키는 장치)를 함께 돌리는데 매장 조명 열기에다 사람들이 대거 몰리면서 내부 온도가 올라갔기 때문이다. 이 백화점은 전력 소모를 줄이기 위해 공조기를 끄는 실험을 했다가 환기가 되지 않고 내부 온도가 올라가는 바람에 고객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난방을 하지 않고 공조기만 돌려도 온도가 25도까지 올라가는 경우가 생긴다”며 “20도로 맞추기 위해 에어컨을 틀어야 할 정도”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백화점들은 “전력 사용량을 줄일 만큼 줄이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게다가 15일부터는 피크타임 전력사용량을 전년 대비 10% 절감해야 하기 때문에 고민이 크다. 다른 백화점 관계자는 “전력 문제를 감안해 외벽 조명은 대부분 전력 소모가 적은 LED 조명으로 교체한 것”이라며 “영업시간 이후의 광고탑 점등 시간, 주차장 점등 시간과 공조기 운영 시간을 줄이는 등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연말만 되면 경쟁적으로 설치하는 백화점의 크리스마스 조명이 과한 것 아니냐고 지적한다. 직장인 이다해(29·여)씨는 “밤에 조명이 켜져 있으면 예쁘긴 하지만 요즘 같은 전력난에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며 “전력난이 심각한 상황인 만큼 화려한 조명을 줄이는 게 백화점 이미지를 더 좋게 만들 것 같다”고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