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드득 뽀드득 시리도록 하얀 순백의 美속으로… 겨울 명산 트레킹

입력 2011-12-14 17:45


강원도 태백산과 전라도 덕유산이 두꺼운 눈옷을 입었다. 겨울산의 매력은 무릎 깊이로 쌓인 눈을 헤치며 산을 오르는 데 있다. 특히 정상을 수놓은 나목에 눈꽃이나 상고대라도 피면 금상첨화. 올해는 여느 해보다 춥고 폭설이 잦을 것으로 예보돼 정상에서 만나는 설경이 환상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초보자도 쉽게 오를 수 있는 겨울 명산으로 트레킹을 떠나본다.

참·주목나무 군락 장관… 정상에서 맞는 해돋이 황홀

◇태백산(강원 태백)=태백산 산행의 참맛은 정상에서 맞는 황홀한 해돋이와 고사목으로 변한 주목에 핀 상고대와 눈꽃을 보는 것이다. 등산로는 유일사 코스(4㎞), 백단사 코스(4㎞), 당골 코스(4.4㎞), 제당골 코스(7㎞), 사길령 코스(4.7㎞) 등 5개. 유일사 코스로 올라 당골 코스로 하산하는 게 일반적이다. 왕복 4시간 소요.

여느 태백산 산행로와 마찬가지로 유일사 코스도 대체로 평탄하지만 들머리는 제법 가파르다. 발목 깊이로 쌓인 눈을 헤치고 유일사 쉼터를 지나면 등산로는 오솔길로 바뀐다. 이어 키가 점점 작아지는 참나무 군락지를 지나면 장군봉(1567m) 아래까지 주목나무 군락이 펼쳐진다. 태백산에 자생하는 주목은 약 4000그루로 중턱부터 장군봉 아래까지 드문드문 뿌리를 내리고 있다. 수령 900년이 넘는 거대한 주목은 태백산 터줏대감으로 ‘살아서 천년’을 증명이라도 하듯 무성한 잎에 화려한 눈꽃이 피어 있다.

주목 가지 끝에 해가 걸릴 때쯤 태백산 정상에선 또 다른 장관이 연출된다. 북쪽으로 화방재를 건너 함백산(1573m) 은대봉(1442m) 금대봉(1418m) 매봉산(1303m)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봉우리들이 운해 위에 우뚝 솟아 다도해의 섬을 연출한다. 그리고 남동쪽으로는 구룡산(1345m) 면산(1245m) 백병산(1259m) 응봉산(998m)이 중중첩첩 열두 폭 산수화를 그린다.

하얀 산호인가 빙화인가… 나목 상고대 ‘한폭 그림’

◇덕유산(전북 무주)=덕유산은 무주덕유산리조트에서 곤돌라를 타고 편안하게 오를 수 있어 가족을 동반한 산행객에게 인기. 곤돌라에서 내려 정상인 향적봉(1614m)까지는 쉬엄쉬엄 걸어도 15분 안팎. 겨울 덕유산의 주인공은 주목으로, 고사목 가지에 핀 눈꽃이나 상고대가 그림 같은 풍경을 그린다. 거센 바람에 나무조차 뿌리를 내리지 못한 향적봉 능선은 봉우리 아래에 위치한 향적봉대피소에서 볼 때 가장 아름답다. 땅과 하늘의 경계로 변한 능선의 순백은 강렬하다.

덕유산은 상고대가 가장 아름다운 산. 이른 아침에 상고대와 눈꽃이 함께 핀 덕유산은 한 폭의 수묵화를 방불케 한다. 서리꽃으로도 불리는 상고대는 구름이나 대기 중 수증기가 나뭇가지에 얼어붙어 생긴 빙화(氷花).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거미줄처럼 뻗은 나뭇가지에 핀 상고대는 남태평양의 하얀 산호를 닮았다. 이따금 거센 바람에 눈꽃이 흩날리면 상고대 터널은 은색 가루를 뿌려놓은 듯 황홀하다.

상고대가 가장 멋스런 곳은 설천봉과 향적봉을 잇는 산행로. ‘눈 덮인 하늘 봉우리’라는 뜻의 설천봉에서 향적봉까지 나무계단을 따라 상고대와 눈꽃이 터널을 이룬다. 봄부터 가을까지 야생화가 피고 지는 중봉은 겨울 덕유산의 하이라이트. 주목과 구상나무 고사목이 멋스런 철쭉 터널을 통과해 중봉 전망대에 서면 덕유평전 너머로 남덕유산과 지리산 등 백두대간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노고단 정상 오르면 천왕봉 등 지리산 연봉 한눈에

◇지리산(전남 구례)=지리산은 동서 50㎞, 남북 32㎞, 둘레 320㎞로 3개 도와 5개 시·군에 걸쳐 있는 한국 최대의 산악군. 주봉인 천왕봉(1915m)을 중심으로 촛대봉 형제봉 토끼봉 반야봉 등 해발 1000m가 넘는 봉우리가 20개가 넘는다. 그 중에서도 산행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봉우리는 지리산의 얼굴로 불리는 해발 1507m 높이의 노고단.

노고단 겨울 산행은 자동차로 오르는 성삼재에서 시작된다. 성삼재에서 노고단대피소까지는 약 30분. 하지만 겨울산의 속살을 제대로 엿보려면 구례 화엄사에서 오르는 험난한 코스를 선택해야 한다. 신라 화랑들이 심신을 수련하던 노고단에는 골조만 절반 정도 남은 시멘트 건물 한 채가 있다. 노고단산장 조금 못 미쳐 왼쪽 숲속에 위치한 건물 잔해는 1920년대에 외국인 선교사들이 풍토병을 치료하기 위해 세웠던 수양관.

대피소에서 노고단 삼거리까지는 왼쪽 계단길이 지름길이지만 산과 강이 어우러진 구례 들녘을 감상하려면 송신소를 에두르는 오른쪽 길을 선택해야 한다. 원색 차림의 산행객들로 북적이는 노고단 삼거리는 하늘 아래 첫 정거장으로 지리산 종주객과 노고단 산행객들이 어우러져 다리쉼을 하는 곳. 피라미드처럼 쌓은 돌탑이 이국적인 노고단 삼거리에서 노고단 정상까지는 약 750m. 정상에 서면 천왕봉 등 지리산 연봉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성판악코스로 올라 관음사코스로 하산… 절경 만점

◇한라산(제주도)=해발 1950m로 남한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 산행은 해발 750m 높이의 성판악휴게소에서 시작된다. 정상인 백록담에 오르는 산행로는 9.6㎞ 길이의 성판악코스와 8.7㎞ 길이의 관음사코스로 왕복 9∼10시간이 걸린다. 한라산 절경을 제대로 맛보려면 성판악코스로 올라 관음사코스로 하산하는 게 정석. 관음사코스는 경사가 가파르고 험해 반드시 아이젠과 스틱 등 장비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사라악 샘을 지나면 경사가 가팔라지면서 구상나무 숲이 펼쳐진다. 구상나무는 지구상에서 오직 한국에만 자생하는 희귀종이다. 한라산의 구상나무 숲은 약 800만평. 겨울철에는 하산시간을 고려해 정오까지 해발 1500m 지점의 진달래밭대피소를 통과해야 정상 산행이 허용된다. 진달래밭대피소에서 정상까지는 2.3㎞. 급경사 능선과 발아래 펼쳐지는 제주도의 절경이 발목을 잡아 걸음은 더디기만 하다.

정상에 오르면 둘레 1720m, 깊이 108m의 눈 덮인 백록담이 하늘을 삼킬 듯 하얀 입을 벌리고 있다. 성판악코스와 관음사코스를 오른 산행객들이 발을 딛는 곳은 한라산 동릉으로 해발 1933m. 한라산 정상은 반대쪽 서릉으로, 분화구를 에두르는 순환코스가 자연휴식년제 구간으로 묶여 동릉에서 서릉을 감상하는 데 만족해야 한다. 해 떨어지기 전에 하산하려면 오후 1시30분까지 정상을 떠나야 한다.

글·사진=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