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할머니-홀로코스트 생존자 만남 서로 ‘아픔’ 어루만지다

입력 2011-12-14 21:51

일본군 위안부와 홀로코스트(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 생존자.

잔인한 역사의 희생자들이 역사적인 만남을 가졌다.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인 이용수(83) 이옥선(85) 할머니와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한느 리브만과 에셀 캐츠, 네 사람은 생전 처음 만났지만 서로를 위로하며 전쟁 범죄로 인한 상처를 어루만져줬다.

이들의 만남은 13일(현지시간) 저녁 미국 뉴욕 퀸즈보로 커뮤니티칼리지의 시어터에서 이뤄졌다. 위안부 문제를 일본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수요집회 1000회를 맞아 마련된 행사다.

일본군과 나치의 만행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네 사람은 끔찍한 기억을 되새기는 것이 괴로워 보였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이들은 생전 처음 만났지만 포옹하고 서로 얼굴을 어루만지면서 전쟁 범죄로 받은 상처를 공감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15세 때 대만의 가미카제 부대에 끌려갔다. 군인 방에 들어가기를 거부하다 고문을 당했고, 실제 두 명의 여성이 죽는 것을 봤다고 증언했다. 그는 “간신히 도망쳐 집으로 돌아갔을 때에는 내가 죽은 줄 알고 제사를 지낼 때였다”면서 “어머니는 귀신을 봤다며 도망가기도 했다”고 가슴 아픈 얘기를 했다.

캐츠는 “식구들과 함께 폴란드에서 탈출하다가 가족들은 잡혀서 죽고 나만 살아남았다”고 아픈 과거를 회상했다. 리브만은 “독일은 전쟁에서 저지른 범죄에 대해 사과했다”면서 “일본도 과거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일본 외무성과 세계 각지의 일본 외교공관 앞에서도 수요집회 1000회에 호응하는 집회와 시위가 열렸다. 일본 시민단체 모임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 전국 행동 2010’ 회원 1300명은 도쿄 가스미가세키의 외무성 주변을 둘러싸는 인간 띠 잇기 행사를 벌였다. 홋카이도 삿포로시와 가나가와현, 오키나와 등 일본 13곳에서도 자국 정부를 규탄하는 집회가 개최됐다.

이들은 “일본 정부가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 또 한국의 외교 협의 요구에 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따르면 지난 5일부터 17일까지 전 세계 8개국 42개 도시에서 모두 46차례 일본 정부를 비판하는 집회가 열렸거나 개최될 예정이다.

한편 이날 일본 외무성 앞 도로 건너편 인도에는 ‘힘내라 일본 전국행동위원회’ 등 우익단체 회원 1000여명이 모여 “강제연행은 없었고, 위안부는 단순한 매춘부”라고 주장했다.

워싱턴=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