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환의 삶과 신앙] 사랑 이야기

입력 2011-12-14 18:03


심리치료 분야에 자서전 쓰기와 심리치료라는 분야가 있다. 이것은 심리학의 한 연구 분야로 인간은 누구나 다 자기 삶을 책을 쓰듯 살고 있고, 인간의 삶이 한 편의 책, 소설과 같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인간의 삶을 한 편의 소설, 한 권의 책이라 생각하며 접근할 때 재미있는 모습들이 드러난다. 내가 쓰는 나의 책, 나의 일생, 나의 삶의 책에는 무슨 제목을 붙일 수 있을까? 나의 책, 내 삶의 책, 내 이야기의 주제는 무엇일까? 나는 지금 어느 부분을 써 내려가고 있을까? 내 이야기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누구이며, 어떤 주인공들이 어떤 플롯(plot)을 가지고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을까? 내 책을 써 내려가는 기본 음조와 기본 구조는 무엇일까? 기쁨에 찬 희극(Comedy)일까? 수수께끼 같은(Irony) 것일까? 한과 설움의 비극(Tragedy)적 이야기일까? 깊고 심원한 역설적 삶(Paradox)의 신비일까? 아무튼 우리의 삶을 한 편의 책이라 비유하면 우리 삶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새로운 통찰이 생기는 것 같아서 참 의미 있는 삶에 대한 접근방법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각자 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작가, 소설가, 이야기꾼’이라 한다면, 예수님이 써내려간 책의 주제는 무엇이었을까? 예수님은 자신의 이야기의 가장 큰 주제를 ‘사랑’이라 대답하셨다. 예수의 삶은 한마디로 ‘사랑 이야기’란 말이다.

예수의 사랑 이야기의 핵심을 마태복음에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표현하고 있고, 이어서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고 진술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 부분을 특히 강조하여 이 말씀이 자신의 가르침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율법서란 책의 주제라고도 밝히고 있다. 즉, 사랑이 하나님이 써내려가는 이야기책의 주제이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가 인생이란 무대에서 써 가야 하는 내 책의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미국 인권운동과 흑인해방의 대표적 리더였던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목사의 자서전에 보면 영웅이라 칭송받던 그도 한 연약한 인간으로서 불안, 회의, 번민 속에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 고뇌의 복판에서 홀로 하나님과 마주 대할 때, 한밤 우주의 별을 보며 새벽녘 피어오는 안개를 보며 문득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한 힘으로 보잘것없는 자신을 사랑하는가를 깨닫곤 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는 이 깨달음에서 신비스러운 힘을 얻고서 다시금 자신의 동족을 위해, 그들의 해방을 위해, 백인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흑인해방운동, 인권운동, 사랑의 운동을 지켜갈 수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우리가 생을 살다가, 우리 삶의 이야기책을 쓰다가 문득 더 이상 써 내려가지 않을 때가 있다. 한 장(chapter)에서 머물고 더 이상 써내려가지 않는 때가 있다. 사랑, 기쁨, 의미, 보람, 희망보다는 미움, 슬픔, 무의미, 절망이 지배하는 것 같은 때가 있다. 이때 우리가 시선을 돌려야 할 곳이 있다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나타내신 하나님의 사랑이다. 십자가의 말없는 사랑, 누구나 조용히 크게 품어내시는 사랑, 그 사랑을 먼저 발견할 때 이 사랑이 우리 삶의 이야기를 계속되게 하는 진정한 삶의 에너지요 모든 ‘새로움’의 원천, 창조의 샘물이라 믿는다.

중세의 신비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는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나를 적시며, 마침내 내 가정, 내 이웃, 내 친구를 적시는 신비한 새벽안개에 비치는 햇빛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것을 깨우고, 성장하게 하는 생명의 힘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기 예수의 몸으로 오시는 이 강림절의 기간에 우리 모두에게 이런 사랑의 체험, 사랑의 이야기가 있기를 기원해본다.

■ 정석환 교수는 이야기심리학을 통해 보는 성인 발달과 목회상담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현재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장 겸 연합신학대학원장을 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