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의구] 1000번째 수요 집회

입력 2011-12-14 17:36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길에 14일 ‘평화비’가 세워졌다. 매주 수요일이면 어김없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리던 그 자리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1000번째 수요 집회를 기념해 시민 성금 3000만원을 모아 제작한 것이다.

비석이라고 하지만 재질이 청동이고, 형상도 치마저고리 차림으로 의자에 앉은 130㎝ 높이 소녀상이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군에 끌려갔던 14∼16세 때를 재현한 것이다. 한 많은 세월을 따라 백발이 됐지만 아직도 꿈 많던 어린 시절을 잊지 않고 있음을 표현했다.

대신 조각상 옆 바닥에 드리워진 소녀의 그림자는 할머니들의 현재 모습으로 만들었다. 소녀의 곁에는 빈 의자 하나를 더 놓았다. 할머니들의 고통에 공감한다면 누구나 앉으라는 의미다. 소녀의 왼쪽 어깨에는 새 한 마리가 앉아 있다. 먼저 세상을 떠난 할머니들과의 교감을 뜻한다. 소녀의 발은 맨발이고 발뒤꿈치를 차마 땅에 내려놓지 못했다. 두 손은 가지런하게 양 무릎에 올렸으나 주먹을 쥐고 있다. 이 작품을 만든 부부작가 김운성(44) 김서경(46)씨는 “당초 손을 다소곳이 모은 작품을 만들려 했으나 일본 외무성이 평화비 설치 중단을 요구해 모습을 바꿨다”고 말했다.

수요 집회는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당시 총리의 방한을 앞두고 처음으로 열렸다. 4개월여 전 김학순(97년 작고) 할머니가 위안부 출신임을 당당하게 밝히면서 첫 증언을 해 여론이 고조되던 때였다. “내가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일본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하니 말이 되느냐. 눈을 감기 전에 한을 풀어 달라”던 눈물의 기자회견은 다른 생존자들의 증언을 끌어냈다.

수요 집회는 2002년 3월 500회를 맞으면서 단일 주제의 최장 집회로 기네스북에 올랐고, 19년 11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그동안 일본의 양심적인 인사들도 집회에 참석했다. 국제 연대가 확산됐고, 2007년 미국 하원은 일본 정부의 사죄를 촉구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여전히 마이동풍이다. 평화비가 제막된 날에도 외교채널을 통해 철거를 요구하겠다는 기자회견을 했다.

피해 할머니들은 잇따라 세상을 등지고 있다. 정부에 등록된 234명의 할머니 가운데 63명만 생존해 있다. 마지막 생존자까지 사라지면 오욕의 역사도 묻혀질 것이라고 일본 정부는 믿는 것인가?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진정한 사죄의 기회도 소진되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할 것이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