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목회 현장-울산 세계로교회] 땅의 것 보다 하늘, 소유 대신 나눔 택해
입력 2011-12-14 17:29
부산과 울산에서 모인 노숙인 40여명은 수련회 장소에 도착하자마자점심을 먹었다. 가벼운 졸음이 밀려오기 직전 온천으로 이동했다. 온천수 목욕이 끝나자 주최 측은 속옷과 겉옷을 지급했다. 검고 칙칙했던노숙인 얼굴은 이내 환해졌다. 저녁엔 집회가 열렸다. 목사님이 나왔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그에게오라”는 메시지였다. 노숙인들은설교를 들으며 자신의 인생을 반추했다. ‘하나님, 살아계시다면 나를바꿔주십시오. 이 굴레를 벗어나게해주십시오.’ 노숙인들은 눈을 감은 채 기도했다.
◇7년 째 여는 노숙인 수련회=울산 세계로교회(김영용 목사)와 부산 물만골교회(문상식 목사)가 진행하고 있는 노숙인을 위한 수련회 ‘사랑나라’ 현장이다. 매회 40∼50명의 노숙인들이 참여해 삶의 희망을 경험하는 수련회는 지난달까지 제14차 수련회를 마쳤다. 노숙인들은 수련회 3박 4일 동안 사람대접을 받는다. 노숙인들에게 인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기독교 신앙을 통해 삶이 변화되는 기회를 부여한다는 것이 목적이다.
수련회는 두 교회뿐 아니라 울산과 부산 지역 10개 교회와 단체들이 후원한다. 성경공부와 강의, 치유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면서 노숙인들의 상처를 씻어준다.
9일 울산 달동 세계로교회에서 만난 김영용(50) 목사는 “수련회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며 “수련회를 마치면 공동체 생활을 소개하고 이를 통해 일자리를 찾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수련회에서 변화를 받은 송모씨를 언급하며 현재 대구 대신신학교에서 목회자가 되기 위해 공부한다는 얘기도 들려줬다.
세계로교회가 ‘사랑나라’ 행사를 주도하게 된 것은 6년 전 김 목사가 수련회 강사로 참여하면서부터다. 노숙인 사역의 중요성을 인식한 이후 3차 수련회부터 교회가 전격 지원, 봉사에 나섰다.
세계로교회 교인들은 매년 봄가을에 실시하는 수련회가 다가오면 바자회를 개최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돕는다. 또 식사와 섬김 등의 봉사에도 흔쾌히 자원하고 있다. 김 목사는 “전국에서 노숙인을 위한 수련회를 정기적으로 여는 행사는 ‘사랑나라’가 유일할 것”이라며 “수련회를 개최할 때마다 변화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예배당 없는 교회=세계로교회는 큰 교회가 아니다. 장년 출석 100여명에 불과한 소형교회다. 그럼에도 ‘사랑나라’와 같은 활동을 하게 된 것은 창립 14년을 맞은 교회 역사와 관련이 깊다.
1997년 설립된 교회는 2004년 예배당 없는 교회로 새출발했다. 사연은 이렇다. 교회 설립 3년 만에 기존 교회 예배당을 구입한 세계로교회는 이후 신도시로 옮겨 교회당을 건축하자는 결정을 하게 된다.
2004년 5월 이를 위한 특별새벽기도회를 시작했다. 그런데 기도를 하면 할수록 김 목사 마음엔 ‘건물에 교회 힘을 모두 쏟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고심 끝에 새로운 형태의 교회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
새벽기도회가 끝나는 마지막 주일, 김 목사는 “교회 건축한다고 헌금 쏟아 붓지 말고 예배당 없이 가보자”고 제안했다. 교회가 발칵 뒤집혔다. 한 달 동안 새벽기도까지 했는데 갑자기 예배당을 안 짓겠다니. 게다가 예배당 없는 교회가 또 뭔가. 세계로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교단 아닌가. 나이 많은 권사, 집사들은 성전을 팔면 저주받는다는 말까지 했다.
김 목사는 “신자인 우리가 교회이고 우리 몸이 성전”이라고 설득했다. 그래도 반대가 수그러들지 않자 제안을 내놨다. 예배공간이 준비되면 하나님 뜻으로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으면 원래대로 땅 사서 건축하자고 했다. 당시 교회는 노인을 위한 무료급식을 하고 있었다. 협력하고 있는 사회복지관과 연결되면서 선뜻 강당 사용허가를 받았다.
하나님 뜻으로 여긴 교회는 예배당을 팔았다. 그리고 매각 기금은 교회 식구들에게 모두 돌려줬다. IMF 금융위기 시절 어려움을 당했던 신자들을 대상으로 100∼300만원씩 분배했다. 남는 돈은 필리핀 제2세계로교회 건축에 모두 사용했다.
이것이 세계로교회의 나눔 사역의 신호탄이 됐다. 이후 교회는 영세민 자녀들에게 성탄 선물을 나누는 것을 시작으로 어려운 가정을 돌보는 재가복지 사역, 장애인 주간보고 센터 후원, 선교사·농촌교회 후원 등을 펼치고 있다.
교회는 지금까지 예배당을 두 번이나 더 옮겼다. 2007년 복지관 강당에서 YMCA회관으로 옮겼고 지난해 7월엔 현재 교회가 사용하는 7층 빌딩으로 이사했다. 빌딩은 울산기독교사회봉사회와 공동으로 구입, 사용 중이다. ‘우리만을 위한 예배당은 안 짓는다’는 교회 정관에 따라 예배당은 다용도로 활용된다.
김 목사는 “세계로교회는 땅의 것보다 하늘, 건물보다 사람, 소유보다 나눔을 지향한다”며 “교회 건물을 소유하는 것보다 무엇을 위해, 누가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교회는 이 같은 봉사 공로를 인정받아 2007년 울산시 자원봉사 대상을 수상했다(usgr.or.kr·052-261-0259).
울산=글·사진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