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방우체국-파푸아뉴기니 문성 선교사] (8) 잊혀진 부족형제를 찾아서
입력 2011-12-14 17:28
두려움 속 찾은 정글 마을에도 하나님은 계셨다
말로만 듣던 원주민과 파푸아뉴기니 도시에서 느끼는 원주민, 그리고 정글 부족 원주민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래서 파푸아뉴기니에 도착 후에도 언어 훈련은 물론 정글 적응 기간이 1년간 주어진다.
파푸아뉴기니 공용어인 피진어 4차 시험에 통과한 후 부족 조사가 시작됐다. 떠나기 전날 밤 잠을 설치며 침낭과 비상장비, 비상식량과 언어분석 자료를 준비하며 마음이 설레었다. 아내 이민아 선교사는 부족 조사에 동행하는 한국인 최초의 여성 선교사였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더욱 결의에 찬 모습을 보였다.
파푸아뉴기니에서 40년을 지낸 미국인 선교사 짐 태너와 함께 찾아갈 곳은 아와 부족이었다. 아와 부족은 미국인 선교사 마이클 헨덜슨이 사역하는 아지아나 부족과 인접한 부족으로 14년 전 첫 발견돼 아직까지 선교사가 들어가지 못한 곳이다.
우리는 5명이 타는 경비행기 세스나에 몸을 싣고 아지아나 부족이 있는 곳으로 30여분을 날아갔다. 다시 소형 헬기로 갈아타고 아와 부족이 사는 마을을 찾았다. 해발 2400m가 넘는 산악 지역은 소형 헬기가 착륙할 땅도 찾기 어려웠다. 원주민 움막도 경사진 산중턱에 겨우 세워져 있어 헬기는 몇 번을 돌았고 겨우 비스듬하게 내렸다.
나무가 없는 산이었다. 물도 부족한 곳이어서 벌거벗은 원주민들은 질병과 굶주림에 앙상했다. 간단한 언어 분석을 마치고 떠나려는 우리에게 그들은 “가지 마세요. 우리는 선교사를 기다렸습니다”라며 붙잡았다. 그들의 얼굴은 병든 사람처럼 무표정했다. 아직도 아와 부족에겐 선교사가 가지 못하고 있다.
다음은 중형 승합차를 타고 12시간을 달렸다. 멘디라는 도시에 도착해 트럭을 빌려서 3시간을 비포장도로를 따라 산악 지역으로 들어갔다. 비바람이 심한 산악 속을 몇 시간을 흔들거리며 트럭 뒤에 타고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도중에 트럭이 고장 나 그나마도 더 이상 갈 수도 없었다. 갈 길은 먼데 어둠이 깔리기 시작해 하는 수없이 손전등을 의지하며 폭우 속을 걸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목적지인 개와 부족을 찾아가야 했다.
그런데 우리 앞에는 폭이 30m가 넘는 큰 강이 나타나며 길을 가로 막았다. 상류 강물은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 거셌다. 건너갈 곳을 찾아 헤매다 줄다리를 발견했다. 원주민 안내자가 맨 앞에 서서 인도했고 미국인 선교사 짐과 피얼스 그리고 우리 부부가 뒤를 따랐다. 맨발로 건너는 원주민 안내자는 잘 건너가는데 산행을 한답시고 정글화로 치장한 나는 비로 젖은 줄 위에서 미끄러워 걸을 수가 없었다.
다리 중앙 부분에 이르자 갑자기 줄다리가 좌우로 심하게 흔들렸다. 저 아래는 폭우로 불어난 강물이 흐르는 소리가 정글을 뒤흔들었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내 앞에 걷고 있던 아내조차 생각나지 않았다. 오직 내가 살아야겠다는 것뿐이었다.
그때 안내자가 “고노 아가오!”(하늘을 보시오)라고 소리쳤다. 우리는 다같이 하늘을 보았다. 그런데 신기하게 좌우로 흔들리던 줄다리가 멈추는 게 아닌가. 그렇게 해서 다리를 건넜다. 다리를 건너자 양손에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제야 내가 안전하다는 것을 알고 “주님, 감사합니다” 하고 기도했다.
하늘을 보라는 말은 얼마나 지혜로운가. 하나님이 정하신 물리법칙에 따라 흔들리는 다리가 멈춘 것이었다. 시련이 있을 때 주님만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아내에게도 같은 경험을 주셨다. 7시간을 정글 속을 걸어 구사라는 마을을 찾았을 때다. 산이 험해 계곡을 내려가는 데만 4시간이 걸렸다. 계곡에 흐르는 강을 가로지르기도 했는데 모두 손에 손을 잡고 마치 밧줄처럼 의지한 채 건넜다. 도착한 곳은 산사태로 이미 길이 없어진 계곡 위였다.
계곡 지반은 약했고 두손과 두발로 기어가듯 디뎠다. 20m 아래로는 맹렬한 강물이 흘렀다. 길도 없는 계곡은 대각선으로 올라야 했다. 아내 역시 천천히 움직였지만 간신히 손가락으로 잡았던 바위가 무너져 내려 그만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부족 제자 동료들이 아내의 손과 발을 잡았지만 움직이지 못했다. 두려움 때문에 근육이 굳어져버린 것이다.
그때 부족 동료 한 명의 아내 주니가 “여보, 이 선교사가 떨어지면 당신이 안고 먼저 떨어져요”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래, 내가 그렇게 하려고 했어” 하는 게 아닌가. 자신은 죽어도 이 선교사를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부족 형제들은 이렇게 우리를 사랑한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내내 울던 이 선교사는 울음을 멈췄고 마음을 진정하고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내는 정상에 오른 뒤에야 “주님, 감사합니다” 하며 기도할 수 있었고 온몸의 근육이 풀렸다고 했다. 그렇게 찾아간 구사 부족 원주민들은 우리의 퉁퉁 부어 오른 다리를 잡고 울었다.
많은 독자들은 이런 상황에서 선교사들은 담대하게 행동하며 전진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영화나 소설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적어도 우리 경험으로는 극한 공포와 두려움을 만나면 주님을 찾을 능력도, 기도 생각도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죄인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죽음의 두려움과 공포가 어떤 것인지 가르쳐 주셨다. 이 경험은 지금도 부족 형제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지금 사역하고 있는 코라 부족 조사를 앞두고 정글을 다니는 동안 말라리아에 걸려 자리에 눕는 일도 있었다. 체온이 40도를 넘나들었다. 열이 올라가면 온몸의 뼈마디에 참을 수 없는 통증이 일었다. 그러면서 온몸에 비 오듯 땀이 흘렀고 그러면 열이 내렸다. 2주를 이렇게 지냈다. 코라 부족 조사에 갈 수 있다면 기적이라고 동료 선교사들이 말했다. 그런데 부족 조사를 떠나는 당일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몸에 힘은 없었지만 열이 내려가고 통증이 멈췄다. 나는 그대로 헬기에 몸을 실었다.
파푸아뉴기니에서 세 번째 높은 해발 3750m의 마이클 마운트 정상. 그 주위를 비행기로 돌면 깊은 정글이 발아래 펼쳐진다. 정글 속에 얼마나 많은 부족 형제들이 살고 있을까? 큰 뱀처럼 구비 흐르는 와기 강을 따라가는 우리 마음에 흥분과 기대가 일어났다.
말라리아의 고통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 속에서 새 생명을 허락하신 주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렸다. 코라 부족을 향한 길은 육로가 없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지만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했다. 그리고 이곳 코라에 정착했다. 아직도 정글의 많은 부족은 선교사가 없어 복음을 듣지 못하고 있다.
● 문성 선교사
문성(60) 선교사는 아내 이민아 선교사와 함께 20년째 파푸아뉴기니 선교를 하고 있다. 지병 박리성대동맥류 때문에 인공동맥을 차고 있다. 선교지 코라 부족은 식인을 할 정도로 원시적이다.
문성(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