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번째 일본군 위안부 수요집회] 김요지 할머니, 1000회 하루 앞두고 별세 “평생 홀로 외로워했는데”
입력 2011-12-14 00:44
13일 서울 영등포동 신화병원에 마련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요지(87) 할머니의 마지막 길은 외롭지 않았다.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할머니의 임종 소식을 전해들은 30여명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와 밤새도록 빈소를 지켰다. 민주당 정동영 의원 부부도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했다.
회사원 권현지(27·여)씨는 “비극적인 역사의 피해자인 할머니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며 조문 이유를 설명했다.
할머니의 올케 박옥순(74)씨는 “척추 수술과 관절염, 노인성 질환으로 힘들고 어렵게 살아온 게 가장 가슴 아프다”면서 “평생을 홀로 지내며 참 많이 외로워했다”고 눈물을 훔쳤다. 박씨는 “우리 가족도 내일 1000회 수요집회에 참석하려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1924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17세 때인 41년 평양에서 또래 7명과 함께 기차로 연행돼 중국 한구(漢沽)와 하이난다오(海南島) 등지에서 위안부 생활을 하며 고초를 겪었다. 광복 후인 46년 일본을 거쳐 평양에서 가족과 재회했다.
이후 고향 전주로 내려온 김 할머니는 동생 집에서 조카를 돌보며 살았다. 위안부 피해 여성임을 밝히기를 꺼리다 동생의 권유로 2005년 정부에 신고했다. 정부가 마련해준 전주의 임대아파트에서 간병인의 도움을 받으며 생활하다 2009년부터 서울로 올라와 노인요양병원에서 지냈다.
빈소를 지키던 정대협 관계자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계속 돌아가시고 있다”며 “한 분이라도 더 살아계실 때 일본의 진심어린 사죄가 나와야 할머니들의 한이 조금이라도 풀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