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번째 일본군 위안부 수요집회] “국민·정치권이 관심 없는데 일본 정부가 변할 리 있겠소?”
입력 2011-12-13 22:16
김판수(72·사진) 할아버지는 매주 수요일 서울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선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한 맺힌 외침을 쏟아내는 그는 수요집회에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유일한 남성 자원봉사자다.
14일 세워지는 ‘제1000회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집회 기념 평화비’도 김 할아버지의 아이디어다. 그는 지난해 10월 13일 939회 수요집회에서 ‘1000원으로 세우는 평화의 기념비 모금’을 제안했다. 평화비 건립이 불행했던 역사를 기억하고 정의를 세우는 길이라 생각해서다.
김 할아버지는 13일 “평화비는 전 세계 평화 시민이 연대했다는 확실한 증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평화비 건립에 일본대사관이 반대의사를 표명했지만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반드시 세우겠다는 입장이다. 건립에 들어간 3800여만원도 시민의 도움으로 1년 만에 모두 채워졌다.
김 할아버지가 수요집회에 처음 참여한 것은 2005년 1월이다. 그는 중학교를 졸업한 지 43년 만인 2001년 방송통신대에서 뒤늦게 일본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배운 지식을 나눠야겠다고 다짐했다. 2004년 말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살고 있는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을 방문한 뒤 이들의 한 맺힌 삶을 이해하게 됐다.
하지만 수요집회에 나가는 것은 주저했다. 그는 “위안부로 끌려간 고통도, 세상의 멸시와 외면도 그대로인데 길가에 앉아서 하염없이 외치는 고통까지 견뎌야 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며 “‘그만두자, 하지 말자’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끝내 말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 그를 수요집회로 이끈 것은 할머니들의 눈물이었다. 그는 “‘일본 땅 전부를 준다고 해도 내 짓밟힌 인생이 회복되지 않는다’는 한 할머니의 말을 듣고 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함께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수요집회가 1000회까지 이어졌지만 남성 참가자는 여전히 드물다. 정기 봉사자는 그뿐이다. 김 할아버지는 “많은 이들이 ‘부끄러운 일인데 왜 기억하느냐’고 하고, 몇몇은 ‘지나간 일은 이제 잊자’고 한다”며 “하지만 부끄러운 것은 우리가 아니라 일본이다”라고 강조했다.
김 할아버지는 1000회에만 반짝 관심이 생기게 될 것을 걱정했다. 그는 “국민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국민도 정치권도 관심이 없는데 일본이 변할 리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