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염성덕] 국채보상운동

입력 2011-12-13 17:50

일제는 대한제국의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넣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그 중의 하나가 대한제국이 일제의 차관을 도입하도록 한 것이었다. 1907년 대한제국의 외채는 1300만원에 달했다. 당시 77만원대의 적자 예산을 편성했던 대한제국으로서는 상환이 불가능한 거액이었다.

대한제국이 일제의 속국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으려고 국민이 한마음으로 펼친 운동이 국채보상운동이다. 1907년 2월 대구 대동광문회 회원인 서상돈의 제안으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은 삽시간에 서울 부산 평양 진주 등으로 확산됐다. 그해 4월 말까지 4만여명이 참여해 230만원 이상을 모금했다. 여성들이 애지중지하던 패물(佩物)을 기탁했고, 일본 유학생 800여명과 최하류층인 기생들도 운동에 뛰어들었다.

국권회복운동이 전국으로 널리 퍼지자 일제는 악랄한 방법으로 탄압에 나섰다. 매국단체인 일진회를 통해 훼방을 놓았으며, 국채보상운동의 핵심 인사를 구속했다. 일제의 탄압으로 국채보상운동은 아쉽게 좌절됐지만, 국민을 대동단결시킨 주권수호운동임에는 틀림없다.

국채보상운동의 정신은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으로 부활했다. 집집마다 장롱 안에서 잠자고 있는 금반지, 행운의 금 열쇠, 금 트로피 등을 들고 나와 나라에 기부하거나 시장에 팔았던 것이다. 이 운동에 350만명이 참여해 227t의 금을 모았다. 한국은행이 3t을 매입하고 나머지는 수출해 21억 달러에 달하는 부채를 갚았다.

국가를 부도 위기에서 건져내기 위한 국민운동으로 외신의 주목을 받았다. 대만 연합보는 지난달 한국의 금 모으기 운동을 자세히 소개하며 “그리스 국민은 한국인의 희생정신을 배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이 운동이 외환위기의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데 악용됐다고 지적하는 학자들도 있다.

유럽에서도 국채보상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탈리아는 지난달 28일을 ‘국채 사는 날’로 정하고 국민에게 국채 매입을 적극 권유했다. 은행들은 이날 하루 국채 매매 수수료를 받지 않았고, 이탈리아 축구선수협회는 국채 매입 홍보 활동을 벌였다. 스페인에서는 시민 투자자 20만명이 42억 유로어치의 국채를 샀다.

하지만 애국심만 믿고 재정 위기 상태에 있는 나라의 국채를 샀다가는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애국심과 수익률 사이에서 고민이 생기면 한쪽은 과감하게 포기할 수밖에. 매입 취지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