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테레사] 고궁을 추억하며

입력 2011-12-13 17:27


나는 말죽거리가 아직 밤나무 골목이어서 추석이면 햇밤을 몇 말이고 따다 먹던 시절에 서울을 떠났다가, 한강에 다리가 수없이 놓여 강북과 강남이 연결되고 고층건물이 잔뜩 들어섰을 때 잠실로 돌아왔다. 그 사이에 서울은 랜드마크였던 옛 건물이 새로 생긴 고층빌딩 때문에 왜소한 흔적으로 변해 버리고, 또 없어지기도 하고 해서 제대로 방향을 잡기도 힘들어졌다.

그래서 고마운 곳이 옛 궁궐이다. 아직도 낯익은 곳이 많이 남아 서울의 흔적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작약 만발한 덕수궁의 봄은 사생을 하는 학생들 차지였다. 초여름의 경복궁은 사진촬영대회가 자주 열렸다. 경복궁 뒤쪽 국립미술관에서는 시월 초에 국전이 열렸는데, 나라에서 하는 커다란 문화행사라 모든 사람이 관람해야 하는 것처럼 여겨져 한 달 내내 대성황이었다.

당시 국전이 인기 있었던 것은 전시환경과 연관이 있다. 사설 갤러리가 없어 개인전을 열려면 백화점 화랑을 빌려야 했다. 종로 화신백화점에 가장 먼저 화랑이 들어서서 운보, 남관, 김흥수 등이 개인전을 열었다. 뒤에 미도파백화점과 동화백화점에 화랑이 생겨 단체전과 개인전이 가끔 열렸다. 서울신문사 앞에 신문회관과 공보관이 생겨 김환기 화백이 불란서로 가기 전 개인전을 한 번 했다.

창덕궁 비원은 구황실 재산관리국의 허락을 받아야 구경할 수 있었다. 나도 이때 가을 낙엽이 쌓인 비원의 경관에 취해 사진으로 기록을 했다. 나중에 이 사진들을 모아 당시에 흔치 않던 전지 컬러 프린트로 테마사진전 ‘비원’을 공보관에서 연 것은 지금 생각해도 자랑스러운 일이다. 군사정부가 되면서 일반에 열린 종묘에서는 이런저런 단체들의 모임이 많았다.

지금은 어엿한 궁으로 변한 창경원에 벚꽃이 필 때면 초중등학교 학생들의 원족이 많아 항상 붐볐고, 모델들이 벚꽃 그늘에 양산을 쓰고 카메라를 향해 포즈 취하는 장면도 있었다. 대장각이나 연못을 중심으로 ‘새벗’ 같은 학생 잡지사가 주최하는 사생대회가 열렸다. 일제가 구경거리를 주기 위해 만든 동물원에는 공작, 하마, 원숭이들이 있었는데 시민들은 신기한 동물 구경에 정신이 없었다.

가장 아쉬운 곳은 경희궁이다. 광화문과 서대문 사이에 있던 궁궐 건물은 일제 때 송두리째 사라지고 서울고등학교가 떡하니 들어선 것이다. 다만 서울고 체육관이 있던 자리에 공작 무늬가 새겨진 계단과 축대가 남아 있어 옛 궁터였다는 사실을 어슴푸레 전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서울은 이런 고궁이 있어 아름답다. 어른부터 어린이까지 누구든 몇 번씩 찾는다. 고궁에 대한 이런 추억은 다음 세대로 줄곧 이어질 것이다. 도시 구성원이 공유하는 추억은 많을수록 좋다. 그게 공동체의 힘이니, 사라져 가는 옛것을 지키는 데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테레사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