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신학’ 주창자 폴 스티븐스에게 듣는다… “신학은 교회 넘어 생활 전체에 해답 줘야”

입력 2011-12-13 17:55


대담=이대경 서울중국신학원 교수

세계적 석학 폴 스티븐스(74) 캐나다 리전트칼리지 명예교수의 제자 사랑은 남다르다. 최근 IVP가(한국기독교학생회출판부) 번역 출간한 ‘일 삶 구원’을 말레이시아인 제자 엘빈 융(말레이시아 카자나내셔널 연구원)과 공저하는가 하면 한국인 제자인 이대경(53) 서울중국신학원 교수의 ‘크리스천생활연구소’ 개원을 축하하기 위해 내한했다. 본보는 두 교수와의 대담을 통해 스티븐스 교수가 오랫동안 주창해온 ‘일의 신학(Theology of Work)’의 의미, 한국교회와 중국교회에 대한 시사점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스티븐스 교수님을 보면 신학은 따분하거나 메마른 학문이 아니라 활기차고 기쁨을 주는 학문이라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신학의 의미를 쉽게 말씀해주십시오.

△스티븐스 교수=신학에 대한 이해와 관련해 청교도신학자 윌리엄 펄킨스가 정의한 것이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신학이란 영원한 축복을 누리는 삶에 대한 학문입니다. 신학을 하는 방법에는 위를 바라보며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과 이 땅의 문제와 사람들 가운데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알아가며 추구하는 아래로부터의 신학이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이해는 두 가지 방법을 균형 있게 추구할 때 가능해지요. 그래서 저는 신학을 높은 곳에 있는 것이기도 하고 이 땅의 현실이기도 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복되게 영원히 살아가는 것을 추구하기에 늘 즐겁게 신학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서울중국신학원에서 ‘크리스천생활연구소’를 개원했습니다. 이 연구소가 한국교회를 위해 어떤 기여를 해야 할까요.

△스티븐스 교수=사람들은 하루 24시간을 거의 규칙적으로 살고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략 잠자는 시간 여덟 시간, 경건의 시간 30분, 세끼 식사 두 시간, 목욕 및 위생 한 시간, 옷 입기 30분, 출퇴근 두 시간, 일터에서 여덟 시간, 가족과 두 시간 정도의 시간을 보내죠. 그렇다면 잠자는 시간 외에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일터에서 보냅니다. 따라서 ‘일의 신학’이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될 것입니다. 일은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일은 왜 하는가? 일은 단순히 생존을 위한 수단, 즉 저주인가? 아니면 삶의 의미를 알게 하는 축복인가? 일은 하나님과 어떻게 관련돼 있나? 일은 천국과 어떻게 관련돼 있나? 우리들이 하는 일에도 영원한 가치가 있나? 성경에서는 일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고 있나? 리더십, 일터에서의 윤리, 직업윤리 등의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다루기를 바랍니다.

-2년 전 한국에 오셨을 때 모든 신학교들이 ‘일의 신학’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창하셨는데요. ‘일의 신학’의 당위성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스티븐스 교수=첫째, 목회자는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일을 이해해야 합니다. 둘째, 목회자는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의 사역뿐 아니라 세상 속에서 일상의 삶과 일이라는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야 합니다(엡 4:11∼12). 셋째, 신학은 전인격적인 학문이어서 교회 안에서의 일뿐 아니라 모든 삶의 영역을 이해하는 것을 추구합니다. 넷째, 신학교육은 성직자들에게만 국한돼서는 안 됩니다. 목회가 신학적이어야 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가 신학적이어야 합니다.

-현재 많은 신학교가 교수님이 제기한 주제들을 거의 다루지 않는데요.

△스티븐스 교수=지금의 신학교육은 많은 부분이 수도원 영성을 이어받은 교회중심 신학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도들은 수도사가 아니기 때문에 교회에서 지내는 시간보다는 세상 속에서 지내는 시간이 훨씬 많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거룩함을 유지할 것인가라는 게 신학교육의 주요 주제가 돼야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거룩함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삶 속에서 중요한 의미들을 갖는 주제인 윤리, 경제와 자본주의, 기독교와 경제구조, 돈과 이자, 일의 영성, 생활영성, 소명과 직업, 생활현장에서의 선교, 리더십, 기업가 창의정신, 세계관 등을 다뤄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제들을 가르치는 신학교는 아주 적습니다. 하나님의 학문을 하는 신학교는 과거를 답습하는 신학에서 미래를 지향하는 신학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중심적이고 목회자중심적인 신학에서 천국의 신학, 모든 하나님 백성의 신학으로 확장돼야 합니다. 사실 이 비전은 전혀 새로운 게 아닙니다. 500년 전 종교개혁자들이 가졌던 비전입니다. 제가 제안하는 신학은 종교개혁자들의 이상을 현실에서 온전하게 이루어내는 데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한국에 오시기 전에 중국도 방문하셨는데요. 중국교회의 발전에 ‘일의 신학’이 기여할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스티븐스 교수=비즈니스에 해당하는 중국어는 ‘성이(生意)’입니다. 중국인들에게 비즈니스는 삶의 의미입니다. 비즈니스는 단순히 생존의 수단이 아니라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크리스천들에게 살아가는 의미는 예수님을 믿는 신앙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인들에게 기독교 신앙은 삶과 일치되는 것이 너무 당연합니다.

신앙은 신앙대로 삶은 삶대로 따로 움직이는 이원론적 기독교는 중국인들에게는 비현실적이고 호소력이 없습니다. 삶과 신앙이 하나가 되고 신앙적인 삶 속에서 살아가는 의미를 찾는 중국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삶의 현장에서 거룩함을 추구하는 ‘일의 신학’이 중국교회의 상황과 잘 맞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소금과 빛의 존재가 되는 기독교인의 신앙을 받쳐주는 신학이 될 것입니다.

중국은 세계역사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급속한 발전에 따라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여러 어지러운 사회문제들이 건강한 기독교신앙을 통해 정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일의 신학’이 제공할 수 있을 겁니다.

폴 스티븐스 교수=캐나다 맥매스터대를 거쳐 미국 풀러신학교에서 목회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30여년간 목회하고 캐나다 밴쿠버캐리홀신학교, 리전트칼리지 등에서 교수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리전트칼리지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교회와 신학교, 회사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21세기를 위한 평신도 신학’ ‘참으로 해방된 평신도’ ‘폴 스티븐스의 결혼이야기’ 등 명저를 펴냈다.

이대경 교수=서울대 치과대를 거쳐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구강악안면외과 전문의다. 캐나다 리전트칼리지 목회학 석사, 한국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 신학석사 등 신학도 깊이 공부했다. 중국선교사를 거쳐 현재 건국대중국인교회 동역사역자, 서울중국신학원 신약학 교수, 크리스천생활연구소 소장 등으로 재직하고 있다.

정리=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