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철휘 (12) 7사단 신참 소대장 ‘호랑이 대대장’ 사랑 독차지
입력 2011-12-12 20:40
드디어 고대하던 실무부대 생활이 시작됐다. 7사단 소대장으로 첫 부임을 했다. 나는 사실 소대장을 마치고 서울에 있는 학군단 교관으로 오고 싶었다. 당시 대대장께서도 “너는 장기복무자로 선발됐으니 학군단 교관으로 갈 수 있는 우선권이 있다. 교관으로 가서 대학원 공부를 마저 하고 결혼도 하고 고등군사반(OAC)을 갔다 온 다음에 전방에 다시 와서 중대장을 하라”고 권유하셨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답변하고 휴가 때 학군단 교관 지원서를 제출하리라 마음먹었다.
내가 학군단 교관으로 가고 싶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소대장 생활 1년간 민통선 이북에서 근무하느라 민간인 구경을 한 번도 못해서 사람 냄새가 무척이나 그리웠기 때문이었다. 마침 대대장께서는 나를 좋게 보셔서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셨다. 그 대대장님은 소대장들이 잘못을 하면 소대원들이 보는 앞에서도 부끄러울 정도로 불호령을 내리시는 열정적인 분이었지만 나는 그분에게 한 번도 꾸지람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대대장님이 나를 좋게 보시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당시 대부분의 소대장들이 소대원들을 데리고 어떤 교육을 하면 그 과목 하나만 하기 때문에 일정 수준에 오른 병사들은 추가적으로 더 할 일이 없었다. 가령 사격훈련을 하게 되면 사격장에서 소대원 전체가 동시에 사격을 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여덟 명 정도가 사격을 하면 나머지 인원들은 대기를 해야 한다. 그 가운데 몇몇 병사들이 소대장이나 선임 하사관(지금의 부사관)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흐트러진 행동을 할 수도 있다. 그럴 때 갑자기 대대장님이 교육 현장에 나타나서 야단을 치곤 하셨다.
어느 날 나는 소대원을 데리고 나가서 사격 훈련을 하게 되었는데 실사격을 하기 위해 대기 중인 병사들에게는 조준 및 격발 연습 등 PRI를 시켰다. 또 사격을 마친 병사들을 놀게 할 수 없어 추가로 수기 훈련을 시켰다. 수기 훈련이란 전시에 무선이나 유선이 다 두절이 되었을 경우에 깃발을 이용하여 서로 신호를 보내서 의사를 전달하는 훈련이다. 한창 교육이 진행되고 있을 때 갑자기 대대장님께서 나타나셨다. 처음에는 사격훈련 시간에 엉뚱한 짓을 한다고 야단을 맞을 각오를 하고 담담한 마음으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랬더니 대대장님 표정이 밝아지면서 얼싸안을 정도로 등을 두드려 주시고 악수를 깊게 해 주셨다. 수동적이지 않고 창의적으로 훈련을 잘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대대에서 회의를 할 때도 몇 번이나 “1중대 3소대장 이 소위는 이렇게 교육훈련을 잘하고 있더라”고 칭찬을 해주셨다. 또한 나에게는 만날 때마다 너무나 친절하고 자상하게 대해 주셨다. 지금 회상해 보면 “너희에게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습 3:20)던 말씀이 나에게 처음으로 이루어진 시절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무서운 분이셨지만 나에게는 언제나 따뜻하게 대해주셨다. 이처럼 나는 대대장님의 신임을 한 몸에 받으며 소대장을 잘 마치고 학군단 교관으로 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독립중대에 근무하느라 주일도 지키지 못했던 나에게 하나님이 큰 상을 주시는 것 같아 송구스러웠지만 좀 더 자유롭고 편한 군 생활을 기대했다. 그런데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학군단 교관으로 가라는 전속명령은 내려오지 않는 것이었다. 조바심이 났지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기도했다. 모든 것을 맡길 때 내가 짧게 드리는 기도다.
정리=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