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박강섭] 까치밥의 미덕
입력 2011-12-12 18:02
그 많던 겨울 철새들은 어디로 갔을까? 충남 서산의 천수만과 서천의 금강호는 겨울 철새 30만∼50만 마리가 날아드는 국내의 대표적 겨울 철새 도래지다. 철새들은 밤에는 추수가 끝난 논에서 낙곡이나 볏짚으로 배를 불리고 낮에는 천수만과 금강호에서 휴식을 취한다. 시베리아에서 서해안으로 날아오는 철새의 개체수가 많은데다 종도 다양해 동아시아 최고의 탐조여행지로 각광받는 곳이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겨울 철새의 개체수가 서서히 줄더니 올해는 예년의 10∼20%로 급감했다. 종도 다양하지 못해 겨울 철새의 전시장이란 말도 옛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최근에는 조류독감을 옮기는 매개체로 낙인 찍혀 겨울 철새 축제를 개최하는 서산, 서천, 군산 등 지방자치단체들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생태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와 서식지 개발 등 환경 파괴를 주 요인으로 꼽는다. 4대강 공사로 인한 중장비의 굉음과 강변을 달리는 자전거도로도 경계심 강한 겨울 철새의 급감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 이유는 철새들의 먹이인 낙곡과 볏짚이 서산 A·B지구를 비롯한 서해안 농지에서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1984년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폐유조선을 이용한 ‘배 물막이 공사’로 서울 여의도의 48배에 해당하는 서해안 갯벌을 간척해 조성한 서산 A·B지구는 우리나라 전체 논 면적의 1%인 3100만평에 이르는 초대형 농지. 기계화 영농으로 낙곡과 볏짚이 늘면서 세계적 철새도래지로 부상한 것이다.
하지만 2000년 말 유동성 위기에 처한 현대건설이 농지를 분할 매각하면서 철새들의 보금자리가 위협받기 시작했다. 농민들이 수익 극대화를 위해 볏짚을 소 사료용으로 내다팔면서 먹이가 줄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볏단을 철강 코일처럼 말아 하얀 비닐로 포장한 거대한 원형 볏단은 햇빛을 반사해 철새들의 비행에 위협적인 존재로 등장했다.
급기야 군산시와 서천군은 철새들의 먹이를 확보하기 위해 일부 농가와 생물다양성 관리 계약을 맺고 겨울보리를 심거나 볏짚을 깔아놓는 등 대책에 부심하고 있지만 예산 부족과 농민들의 비협조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천수만과 금강호로 날아오는 철새들이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순천시는 몇 해 전 순천만생태공원을 철새들의 낙원으로 조성키 위해 수백 개의 농사용 전봇대를 뽑고 음식점들을 이주시켰다. 그 결과 일본의 이즈미시로 날아가기 위해 중간 기착하던 흑두루미의 개체수가 늘고 노랑부리저어새 등 다양한 철새들이 날아들어 새들의 낙원을 형성하고 있다. 덕분에 탐조여행객도 대폭 늘어 지역민의 관광수입 증대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새와 자연,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새로운 실험이 성공한 셈이다.
생태 전문가들은 인간이 새와 공존하기 위해서는 육류 소비를 줄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되새김질을 하는 소가 트림할 때 배출하는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CO₂)는 오존층을 파괴해 지구온난화를 부채질하고 철새들을 쫓아냄으로써 자연비료 역할을 하는 새의 배설물도 기대할 수 없게 한다.
우리 민족은 까치와 공존하기 위해 일부러 홍시를 남겨두는 미덕을 연면히 이어 오고 있다. 까치밥으로 겨울을 난 까치는 이듬해 벌레를 잡아먹음으로써 농민들에게 보은을 한다. 철새들의 먹이인 낙곡과 볏짚까지 싹쓸이하는 삭막한 환경에서는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없다. 까치밥의 미덕을 되새겨 볼 때다.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