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국영TV 하룻새 180도 변신… 부정선거 항의시위 상세 보도
입력 2011-12-12 00:14
수도 모스크바에서 수만명이 참가하는 등 총선 부정 항의 집회가 전 러시아로 확산된 10일(현지시간). 저녁 TV뉴스를 시청하던 러시아 국민들은 자신들의 눈과 귀를 의심했다.
대규모 시위대가 모스크바 중심부의 승리 광장으로 모여드는 화면이 비치더니 “재선거” “재선거” 등의 구호를 외치는 시민들이 클로즈업된 채 방영됐기 때문이다. 모스크바에서 5만명이 참여한 것을 비롯해 60여개 도시에서 최대 10만여명(주최 측 추산)이 참가한 이날 시위는 2000년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권력을 잡은 이후 최대 규모였다. 미국 등 세계 10여개 도시에서 동조시위가 진행됐다.
여기에 더해 국영 NTV의 저녁뉴스 앵커인 알렉세이 피보바로프는 “오늘 수만명이 최근 치러진 총선 결과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며 거리로 나섰습니다. 이들은 선거 결과가 집권 러시아연합당에 유리하게 조작됐다고 주장합니다”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간단히 말해 놀랍게도 국영 TV들이 이날 시위 소식을 일어난 그대로 전한 것이다.
지난 4일 선거 이후 일주일 이상 총선 부정을 규탄하는 집회가 이어졌으나 전날까지도 TV뉴스에서 시위 참여자들은 과격분자나 범법자들로 묘사됐다. 하지만 온라인 미디어는 물론 트위터와 페이스북, 블로그 등 개인 매체에서도 시위 소식이 폭주하면서 국영 TV도 시위 관련 보도를 배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푸틴 총리도 ‘듣는 법’을 배워야 할 때라고 AP통신은 충고했다. 아직까지 푸틴 자신은 어떠한 코멘트도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대변인은 푸틴 총리가 이 같은 비판에 대해 ‘열린 자세’를 갖고 있는 것처럼 비유하기에 여념이 없는 상황이다. 그만큼 상황이 과거와는 달리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변인은 “우리는 시위대의 견해를 존중한다”며 “그들이 하고자 하는 말을 듣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선거 부정 의혹 등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고 AP는 보도했다. 하지만 그는 “현재 진행 중인 반정부 시위대의 요구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배병우 기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