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서는 ‘만사兄통’… 불출마 도미노 물꼬 트나

입력 2011-12-11 21:23

보좌관 비리에 휘말린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이 11일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현 정권 최고 실세로 불리던 이 의원의 결심이 한나라당 의원들의 ‘연쇄 불출마’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고향인 포항에서 내리 6선을 한 이 의원은 한나라당 사무총장 등 당 3역을 두루 거쳤고 최고위원까지 지냈다. 또 이명박 대통령 형으로 ‘상왕’ ‘만사형통’이란 말을 만들어 낼 만큼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인식돼 왔다. 야권은 각종 권력형 비리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영포라인’을 배후로 지목하며 이 의원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이 때문에 여당 내에서도 정두언 의원 등이 18대 초반부터 여러 차례 이 의원의 정계은퇴를 요구하며 압박했다. 그러나 이 의원 위상은 공고했고 내년 총선 출마 의사도 여러 차례 드러냈었다.

하지만 보좌관 금품수수 문제가 터지며 상황이 급변했다. 이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보좌관이 수억원대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체포되자 “보좌관을 잘못 관리한 도의적 책임을 크게 느끼고 있다”며 불출마 가능성을 최초 언급했다. 또 최측근인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2차관도 검찰 수사망에 오르는 등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자 결국 사실상 정계은퇴 수순인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것이다.

이 의원은 이날 오후 여의도 당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자신을 둘러싼 갖가지 의혹에 대해 “대통령 친인척이라는 이유로 온갖 억측과 비난을 받을 때에는 가슴이 아팠지만 묵묵히 소임을 다해왔다”고 말했다. 또 보좌관 문제와 관련,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網恢恢 疎而不失·하늘이 친 그물은 눈이 성기지만 그래도 굉장히 넓어서 악인에게 벌을 주는 일을 빠뜨리지 않는다는 뜻)의 심정”이라고 밝혀 우회적으로 자신의 결백을 강조했다.

이 의원 불출마 선언에 대해 청와대는 “국정운영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어려운 결단”으로 평가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형님’ 논란이 청와대에 부담으로 작용한 측면이 있었는데 그 부분이 해소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이 대통령에게 불출마 의사를 사전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관계자는 “두 분이 최근 직접 만난 적은 없다”면서도 “정무라인을 통해서든, 직접 통화를 해서든 이 의원의 뜻은 전달됐을 것”이라고 했다.

한나라당 변화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컨설팅 ‘오감’의 엄경영 이사는 “국민의 지탄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자기 성찰의 모습을 보인 것이 한나라당이 환골탈태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며 “박근혜 전 대표가 재창당 수준의 개혁을 추진하는 데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보좌관이 구속된 게 결단을 부추긴 측면이 있지만, 이 의원이 “당의 쇄신과 화합에 작은 밑거름이 되고자 한다”고 불출마 배경을 밝힘에 따라 그의 결심은 ‘총선 물갈이론’에 도화선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이다. 특히 박 전 대표가 당 전면에 서는 상황에서 ‘친박계의 자발적 용퇴론’ 등 영남권 다선·고령 의원들을 향한 압박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친박계 현기환 의원은 “이 의원과 별개로 친박계 중진들의 용기 있는 결단은 언제든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중진들에 대해 불출마를 압박한다면 또 갈등이 생길 것”이라고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한장희 노용택 유동근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