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본 대지진’ 9개월] 무너진 제방·가옥 그대로지만… “5년 내 복구” 의지

입력 2011-12-11 18:13


3·11 동일본 대지진, 천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규모 9.0의 지진과 최대 수십m의 쓰나미 사태가 11일로 발생 9개월을 넘겼다. 희생자는 행방불명자를 포함해 1만9334명. 지난 1일 현재 이재민 중 33만2691명은 가설·임대주택 등에서 아직 떠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지진·쓰나미로 빚어진 후쿠시마 제1원전 폭발은 방사성 물질 누출이라는 또 다른 불안감을 확산시키고 있다. 3·11 이후 만 9개월을 앞둔 지난 8일, 일본 도호쿠(東北)지방 미야기(宮城)현에서 가장 피해가 컸던 히가시마쓰시마(東松島)시 피해현장을 찾았다. 히가시마쓰시마는 현청 소재지인 센다이(仙台)에서 동북쪽으로 30㎞ 떨어진 태평양 연안의 작은 도시다.

“할아버지, 이건 꿈이지, 정말 그렇지?”

노비루(野蒜) 시민센터 우쓰미 카즈유키(內海和幸) 소장은 중학교 2학년인 손녀의 이런 투정 아닌 투정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쓰나미에 휩쓸려 숨진 며느리와 그 엄마를 그리워하는 손녀 생각에 우쓰미 소장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시 직원을 통해 피해주민 인터뷰를 의뢰했으나 불가통보를 받았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엄청난 사고 끝에 생긴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감안하면 피해주민들을 상대로 한 인터뷰는 처음부터 무리였을지도 모른다.

◇사라진 가옥 터엔 시든 잡초만=시가 내놓은 자료집에 따르면 시가지의 65%가 침수, 전 세대의 60%인 9000동의 가옥이 전파되거나 반파돼 4만3000명 주민 가운데 절반 이상인 2만3500명이 살 곳을 잃었다. 자동차를 타고 센다이에서 히가시마쓰시마로 들어서자 채 5분도 안 돼 나타난 풍경이 바로 그랬다. 도로변의 주택가는 여기저기 공터 사이에 칙칙하게 빛바랜 집들이 듬성듬성 서 있다. 이가 빠진 듯 보이는 공터엔 시든 잡초들만 을씨년스럽게 떨고 있었다.

노비루 시민센터에서 만난 시 부흥정책과 사토 신지(佐藤伸壽) 주임은 “그 공터엔 원래 집이 있었지만 쓰나미로 부서진 집들의 잔해를 치운 탓에 그렇게 보였을 것”이라고 한다. 그는 “히가시마쓰시마는 해안 남쪽에 인접한 센다이시 마쓰시마 앞바다에 점점이 늘어선 섬들 때문에 쓰나미가 북쪽으로 쏠리면서 피해가 커졌는데, 특히 노비루 지구와 오마가리(大曲) 지구의 피해가 가장 심했다”고 말한다. 자료집에 따르면 노비루 주민은 원래 6500명이었고 이번 재난으로 560명이 목숨을 잃었다. 시 전체 희생자 1116명의 절반이 넘는 숫자다. 오마가리 지구에서도 300명이나 희생됐다.

◇복구까지 시간 많이 걸릴 듯=노비루 지구의 논들은 아직도 진흙탕으로 변한 바닷물에 잠겨 있었다. 9개월이 지난 지금도 제방 복구가 안 된 탓에 바닷물을 빼낼 수조차 없다. 복구 차원에서 보면 오마가리 지구가 훨씬 더 심각했다. 이 지역은 작은 항구에 인접한 마을이었기에 그만큼 피해도 컸다. 주민 3000명이 거주했던 가옥 1000동이 순식간에 쓰나미에 휩쓸려갔고 지금까지도 현장은 바로 엊그제 폭격을 맞은 것처럼 여전히 수많은 가옥 잔해로 가득했다.

현장을 안내하던 사토 주임은 “이번 재해로 나온 가옥 잔해, 망가진 가구, 전자제품 등의 규모는 히가시마쓰시마가 연간 배출해온 쓰레기의 150년분에 해당된다”고 했다. 몇 달 만에 치울 수 없는 양이라는 얘기다. 최근 일본 환경성의 추계에 따르면 쓰나미 때문에 발생한 쓰레기가 임시저장소로 반입된 것은 56∼83%에 불과하다. 임시저장소에 반입된 내용물을 처리하기에도 벅차다는 얘기다.

◇다시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들=3·11 대지진 전만 해도 히가시마쓰시마는 주민 대부분이 김·굴 양식을 비롯한 어업, 농업 등에 종사했고, 특히 굴 양식에 필요한 씨굴은 일본 전체의 60%를 공급했을 정도로 굴 산지로 유명했다. 그런데 지금은 주민의 절반이 이재민으로 전락했고, 양식업도 일부 재개는 했지만 빛이 바래 본궤도에 오르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으로 보였다.

더구나 파괴된 제방이 아직 복구되지 못한 것처럼 일본 정부 지원이 신속하지 못할 뿐 아니라 지원규모 재정조달 차원에서도 적잖은 갈등이 있는 듯했다. 예컨대 피해지역에 대한 정부의 토지보상매입 문제, 쓰나미에 대비하는 제방 높이를 둘러싸고 시와 정부 간의 견해차도 심해 예산 확보까지 많은 난관이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쓰미 소장은 “노비루 시민센터를 비롯,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다시금 회복하려는 남은 주민들의 노력은 이전보다 더 뜨거워졌다”고 강조한다. 사토 주임 역시 “이번 재난을 통해 주민들이 서로에 대한 신뢰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있는 것 같다”며 “5년 내에 다시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히가시마쓰시마의 대재난 피해자들은 그렇게 희망을 다지고 있었다.

히가시마쓰시마(미야기현)=글·사진 조용래 기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