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나라 위한 ‘공동체 교회’가 신뢰회복 해답이다”
입력 2011-12-11 19:44
덕수교회 五色목회가 한국교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손인웅 덕수교회 목사·은준관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 좌담
손인웅(69) 서울 덕수교회 목사는 누가 뭐래도 사회복지 목회와 한국교회 연합운동의 상징적 인물이다. 총회장을 지내지는 않았지만 합리적인 균형감각과 온건한 성품을 인정받아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교단장협의회 운영위원, 기독교사회복지엑스포 조직위원장, 한국교회부활절연합예배 준비위원장,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대표회장, 국민문화재단 이사장 등을 두루 거치며 한국교회의 연합, 일치, 복지목회의 터줏대감 역할을 해왔다.
그런 그가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은준관 총장에게 43년 목회 분석이란 독특한 ‘실험’을 의뢰했다. 연구 리포트는 ‘오색목회’(대한기독교서회)라는 이름으로 9일 출간됐다. 지난 6일 고풍스런 한옥 건물인 서울 성북동 덕수교회 영성훈련원에서 손 목사와 은 총장이 만났다.
(사회=이승한 종교국장)
-손 목사님은 1968년 교육전도사를 시작으로 전도사와 목사 안수, 부목사, 위임목사에 이르기까지 한 교회에서 목회의 한 우물을 팠습니다. 교회가 신학대에 목회·신학적 분석을 의뢰했다는 시도가 참신합니다.
△손인웅 목사=실천신대 총장님을 비롯해 7명의 교수님에게 목회를 평가받기로 한 것은 사실 조심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용기를 낸 것은 내년 은퇴를 앞두고 한국교회에 또 하나의 선례를 남기고 다음 목회자가 목회 설계를 하는 데 ‘징검다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잘 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평가해 주시면 앞으로 후임자가 와서 그걸 토대로 목회 방향을 잘 잡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은준관 총장=한국교회 전반적인 문제에 대해 연구 작업을 벌인 적은 있었지만 이번처럼 신학교 교수 전체가 한 교회를 선정해 목회 신학적으로 ‘케이스 스터디’를 한 경우는 처음입니다. 연구 작업을 진행하면서 발견한 것은 덕수교회가 21세기 한국교회의 나아가야 할 중요한 몇 가지 패러다임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21세기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미래 지표이기도 합니다.
-덕수교회에서 발견한 새로운 패러다임이란 무엇입니까.
△은 총장=한국교회는 교회 성장이 감소세로 돌아서고 사회로부터 신뢰를 점차 잃어가고 있습니다. 교회가 미래 비전과 대안 없이 방황하는 현상을 종교사회학에서는 ‘교회성장 이후기’(After Church Growth)라고 지칭합니다. 지난 40년간 한국교회는 대형화에 성공했으나 그 안에 공동체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겪는 내홍의 저변에는 공동체의 부재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덕수교회는 84년 광화문을 떠나 성북동으로 이전할 때 대형화를 포기하고 공동체를 선택합니다. 미래의 키워드가 대형화가 아니라 공동체 창조여야 한다는 사실을 27년 전 이미 선택한 것이죠.
△손 목사=돌이켜보면 83년 11월 23일 공동의회에서 38년 정동교회 시대를 접고 예배당을 성북동으로 이전하기로 한 것은 우리 교회 65년 역사 중 창립에 버금가는 중요한 결정이었습니다. 서울시 재개발 계획에 따라 교회를 옮기면서 당시 고민은 이랬어요. ‘포스트모던 시대에 21세기형 교회가 성장 지향적인 대형교회인가, 아니면 건강한 중소형 교회인가, 그도 아니면 양적 경쟁을 하지 않고 내실에 충실한 성숙한 교회를 지향할 것인가.’ 교회 인근 광교에 있던 수표교교회가 강남 서초 쪽으로 이전할 때 강남으로 가는 것도 생각해 봤습니다. 그때 ‘미래 교회가 하나님을 모시고 사람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친환경적이고 생명이 약동하는 교회를 지향하는 게 맞을까, 아니면 공간과 기능을 극대화하고 쉽고 편안하게 모여 다양한 프로그램 중심의 북적거리는 쇼핑몰 유형의 교회를 지향할 것인가’하는 고민을 했었죠.
-성북동에 교회를 정착한 후 목사님이 주창한 목회가 오색(五色) 목회 아닙니까.
△손 목사=보시다시피 교회 영성훈련원을 한옥에 꾸밀 정도로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아요. 한국의 전통문화에서 오방(五方, 동·서·남·북·중앙)과 오색(五色, 청·백·적·흑·황)은 융합과 조화, 통전성을 상징합니다. 목회에서도 예배와 교육, 선교, 봉사, 친교라는 다섯 가지 기본 사역이 서로 만날 때 사역의 조화를 이루게 됩니다. 각 사역을 전체적으로 균형감 있게 실천하면서 한 가지 사역을 주제로 2년씩 집중 강화 기간을 뒀습니다. 이런 ‘사이클’로 각 사역을 강화하니 10년 후 모든 사역이 균형을 잡고 상당한 수준에 올랐습니다. 집중과 선택을 통해 10년씩 세 바퀴를 도니 사역의 균형과 발전, 성숙이란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이게 오색 목회인데 이런 통전적 신앙과 신학이 한국교회가 당면한 양극화 문제를 극복하는 데 결정적 돌파구라 생각합니다.
△은 총장=손 목사님의 34년 담임목회는 교육목회, 생명목회, 오색목회, 팀사역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는 반드시 ‘영성’과 ‘전문성’을 지녀야 합니다. 이것이 어떻게 결합되는가에 따라 성직자의 패러다임이 달라집니다. 한국교회는 아이로니컬하게도 영성이 강한 분들은 전문성이 약하고, 전문성이 강한 분은 영성이 약해요. 이분법적 구조 속에 있는 거죠. 제가 손 목사님과 30년 가까이 교제하면서 느낀 것은 목사님이 예리한 해석과 통찰력을 지닌 분이라는 겁니다. 그것은 도피적·개인적 영성이 아니라 역사의 한복판에 임하시고 구원의 손길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읽어내는 영성입니다. 목회자의 영성과 전문성이 성도 개개인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지 못한다면 목회 현장에서 절대 역동성이 생기지 않아요. 회중 패러다임을 세우는 데 접촉점을 찾지 못한다면 목회에서 이것만큼 위험한 게 없어요.
-목사님을 보면 복음적이면서도 에큐메니컬적인 목회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통전적 목회가 가능했던 신앙적 기초는 어디에 있습니까.
△손 목사=60년대 경북대 사범대를 다니면서 한국대학생선교회(CCC) 훈련을 받았어요. 한국CCC 설립자인 김준곤 목사님으로부터 복음에 대한 확신과 능력, 신앙체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웠습니다. 그러면서도 한국기독학생연맹(KSCF) 활동을 하면서 에큐메니컬 운동을 했습니다. 그때 ‘신앙은 복음적이어야 하고 생활은 에큐메니컬한 쪽이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죠. 성경말씀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이란 확신이 있었고 사회적 관심이 높다 보니 전도사와 군복무 시절 부대와 예배당 지하에서 야학을 열기도 했습니다. 닫힌 복음이 아니라 열린 복음을 추구한 것이죠. 이런 활동이 신앙 기초가 되고 그게 지금의 목회에 반영된 것이라고 봅니다. 성북동에 와서도 ‘부자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라며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한다고 외쳤어요. 그러다보니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을 멸시하지 않고 주방에 들어가 봉사부터 하더군요. 참 감사한 것은 부자와 운전사, 가정부 등이 함께 살고 있는 성북동에서 교회가 사회통합의 중간자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은 총장=덕수교회에서 볼 수 있듯 통전적 목회는 결국 하나님 나라 패러다임에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물어야 할 궁극적인 질문은 6만 교회, 7만 목회자, 1200만 성도가 ‘하나님 나라를 존재 이유로 삼고 있느냐’는 것이거든요. 2년 전 국제 심포지엄에서 미국 하트포트신학대 제임스 니먼 교수가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그것은 “미국교회 중 지역에 관심이 없는 교회는 대부분 문을 닫았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역의 아픔과 치료방법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늘 ‘교회가 지역에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지역 주민들의 언어로 대화에 나서는 창조적 공동체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가 덕수교회로부터 배워야 할 교회신학적 교훈은 무엇입니까.
△은 총장=신학방법론에서 볼 때 하나님과 교회, 세계의 관계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뉩니다. 첫째, ‘하나님-교회-세계’의 구조로 하나님과 교회와의 관계가 세계의 관계보다 더 우선시합니다. 둘째, ‘하나님-세계-교회’의 유형으로 하나님을 선교의 주역으로 보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도시산업선교가 나오고 노동운동이 일어났으며 인권운동, 반정부운동으로까지 퍼졌습니다. 셋째, ‘하나님-예수 그리스도(하나님 나라)-역사-교회’의 구조입니다. 하나님은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 재림의 약속을 통해 통치를 시작하셨으며, 역사는 하나님 나라의 약속 안에서 종말론적 지평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 역사 안에 임하시는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고 기억하고 대망하는 하나님 백성들의 공동체입니다. 덕수교회는 지난 60년간 이 세 번째 길을 성실히 걸어왔습니다. 이 같은 교회신학은 교회를 제도, 교제, 선교로만 보려는 근시안적 교회론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한국교회가 반드시 추구해야 할 교회론입니다.
△손 목사=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세상에 선포하고 실천하기 위한 전령으로서 하나님 백성의 모임이요, 성령 공동체이며,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모든 사역을 통해 지향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 나라’의 구현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성도들의 신앙은 개인적 차원에서 교회로 확대돼야 하고 나아가 교회에서 세상으로 그 영역을 넓혀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을 하나님의 통치 아래 들어오게 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역사적·영적·종말론적 공동체로서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까지 증언하는 공동체의 사명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