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시] 세신목욕탕

입력 2011-12-11 17:59

박미산 (1954∼ )

허리 굽은 그녀가

탕 안으로 들어온다

자글자글 물주름이 인다

목만 내밀고 있던 여자가 묻는다

몇 살이슈?

여든일곱이유

난 아흔둘이여

잘 익은 살갗을 열어젖히며 목청을 뽑는다

얼굴이 뽀얀 아주머니가 조그맣게 말한다

난 일흔여덟이에요

요새 일흔이면 새각시여

벌거벗은 마음들이 넘치면서

물주름이 좍 펴진다


세 분의 할머니가 등장한다. 말이 곱다. 몇 살이슈? 여든일곱이유. 난 아흔둘이여. 나이 자랑도 아니고 누가 더 센지 따져보는 것도 아니다. 마주친 길손에게 묵묵히 입 닫고 있을 수는 없다. 상대방에 대한 인사이자 서로 늙어온 삶에 대한 위로다. 그래서 한켠에 있던 뽀얀 할머니도 참여한다. 난 일흔여덟이에요. 요새 일흔이면 새각시여.

일흔여덟과 일흔은 백두산과 한라산의 차이다. 그 차이를 새각시란 말로 한달음에 건너간다. 일흔여덟을 새각시로 쳐주는 저 뽀송뽀송함. 손주들에게 옛날이야기 끝내주게 잘 해줄 것 같은 솜씨다. 물주름이 좍 펴지고 인생살이의 애환도 좍 펴진다. 할머니들이 소녀를 닮아간다.

임순만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