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의 ‘문화재 속으로’] (97) 원형 되살린 고려시대 가위
입력 2011-12-11 17:34
날이 엇갈려 있는 두 개의 다리에 각각 손가락을 끼고 벌렸다 오므렸다 하면서 지레의 원리로 물건을 자르는 데 쓰는 가위의 역사는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서양에서는 고대 그리스를 이은 헬레니즘시대(기원전 300년)부터 가위가 존재했으며, 중국은 전한시대(기원전 200년)의 것이 가장 오래된 것이랍니다. 한반도에는 삼국시대 이전 중국에서 건너온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가위는 신라시대 634년(선덕여왕 3년) 경주에 창건된 분황사 석탑에서 나온 원시형 유물이랍니다. 한 장의 철판으로 만든 이 가위는 손잡이가 없고 두 개의 가윗날이 서로 엇갈리도록 밑부분이 가늘게 둥글려 있는 형태입니다. 사용 방법은 양날 부분에 옷감이나 종이, 머리털을 물리고 가위의 등을 눌러 잘랐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전국 곳곳에서 다수 발굴된 고려시대 가위는 대부분 현재의 가위 모양과 같은 X형이랍니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유물을 들라면 2000년 전북 진안 수천리 고분에서 출토된 가위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용담댐 건설로 인한 수몰지역 발굴조사에서 그릇과 숟가락 등 고려시대 생활도구들과 함께 녹이 많이 슬고 흙이 덕지덕지 묻어 있는 철제 가위 하나가 나왔답니다.
두 개의 가윗날 교차점에 끼운 나사는 꽃잎 모양으로 멋을 부리고, 뭉툭한 가윗날의 중앙에는 능선을 두어 고려인들의 디자인 감각을 엿보게 합니다. 두 개의 고리형 손잡이 중 왼쪽에는 엄지손가락을 끼고 오른쪽에는 나머지 손가락을 끼워 사용하도록 크기를 달리했답니다. 가위 길이는 20㎝ 정도로 일반 사람들의 손 크기를 기준으로 삼았다고 하겠습니다.
고려시대 가위는 철과 구리로 만든 것이 대부분이지만 백동(白銅)을 사용한 것도 있답니다. 조선시대 가위는 손잡이 모양이 고려 것보다는 좌우로 넓은 것이 특징이며 모양도 다양하지요. 조선시대 대표적인 가위는 16세기 한성부판윤(지금의 서울시장)을 지낸 노한경의 분묘에서 출토된 길이 20.5㎝의 청동 가위(광주시 민속자료 제62호)를 꼽을 수 있습니다.
국립전주박물관(관장 곽동석)이 내년 1월 8일까지 여는 테마전 ‘보존처리 문화재’에 옛 가위들이 선보입니다. 전시품 가운데 진안 수천리의 고려시대 가위는 이물질과 녹으로 덮여 있어 형태와 질감을 잃어버렸던 것을 보존처리를 통해 원래 모습을 되찾았답니다. 녹슬어 아예 없어진 부분은 합성수지를 활용해 복원했다고 합니다.
전북 익산 모현동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철제 가위도 관람객들을 손짓합니다. 박물관 측이 고려와 조선시대 두 가위를 X선으로 촬영한 결과 재질과 디자인 등에서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사용한 시대는 다르지만 제작 방법은 전통이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윗날이 넓고 손잡이가 큰 모습을 보니 문득 ‘엿장수 가위’의 추억이 떠오르는군요.
문화생활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