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규의 새롭게 읽는 한국교회사] (41) 기독교와 사회변화 <2>미신 타파
입력 2011-12-11 17:29
19세기 이후 기독교가 아시아, 아프리카로 전파되면서 기독교가 직면했던 일차적 과제는 피선교지의 토착 문화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그것은 척결의 대상인가 아니면 개선 가능한 이방 문화인가? 아니면 복음 안에 수용, 수렴될 수 있는 일반 은총의 산물인가? 일반적으로 선교사들은 문명개화론에 기초해 토착 문화를 이해했다. 선교사들의 일차적 목표는 개종자를 얻고 교회를 설립해 기독교 신앙을 전파하는 것이지만 서구문화 전파도 중요한 가치로 인정했다.
“슬프다, 한국의 우상숭배…” 선교사들 개탄
독일의 구스타프 바르넥은 서양 문화적 배경에서 파송된 선교사들은 선교사의 의도와 상관없이 서구문화 전파자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 점은 우리나라에서도 동일했다. 일본이나 한국에서는 기독교를 통한 문명개화론을 전개한 이도 없지 않았다. 내한한 선교사들의 선교 행위가 결과적으로 서구문명 전파에 기여했다는 점에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실제로 개화는 기독교가 가져온 선물이었다.
한국의 토착 문화나 종교, 신념체계에 대해 그 고유성을 인정하고 긍정적인 평가를 한 이도 없지 않았으나 우상이나 미신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이었다. 서구적 합리주의나 과학적 지식에서 볼 때 받아들일 수 없는 비과학이었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한국사회 일상이었던 미신을 타파하고 합리적 일상을 구가하게 한 일은 또 하나의 사회변화였다.
선교사들은 미신, 우상숭배, 구습의 문제들을 적시하고 있었다. 헐버트(H B Herbert)는 ‘코리안 리포지터리’에서 “조선인들은 자연을 불가사의한 것이 가득 차 있는 세계로 알고 있으며, 도깨비에 대한 상상의 미신과 전설을 믿고 있다”고 지적했다.
알렌은 ‘한국의 풍습, 무당’이란 글에서 이렇게 썼다. “서울의 밤은 매우 조용한데 정적을 깨뜨리는 소리 중 하나가 무당이 내는 소리다. 무당의 말을 믿는 사람은 대부분 하층민이다. 사용하는 도구는 장구 심벌즈 구리막대기 징 바구니 우산 부채 인형 등이며, 이 중 바구니는 콜레라에 걸린 사람의 몸에 쥐가 있다고 믿고 고양이 소리를 내면서 긁는 도구다. 그리고 환자의 상태에 따라 무당은 사용하는 도구나 인형 등을 결정한다.”
게일은 북한 지역을 여행하면서 쓴 글에서 임진강을 지나 송도로 가는 길목에서 서낭당과 서낭, 그리고 재웅을 보았다고 하면서 길가 나무에 매어진 천조각과 장식물, 그리고 그 아래에 쌓여 있는 돌무더기를 발견했다고 한다. 이것은 악령들이 인간에게 달라붙지 못하도록 하는 액을 막는 한국적인 방식이라고 말하면서 조선에는 특별히 지정해 놓은 신성한 나무가 있다고 했다.
초기 내한 선교사들은 한국의 일상이 되어 버린 우상과 미신을 보면서 이런 현실을 시정하고자 했다. 이런 일 역시 교육이나 의료 활동을 통해 점차 시정될 수 있을 것으로 보았고 이의 타파를 계몽하고자 했다.
그 일단이 ‘죠선그리스도인 회보’에 게재된 ‘우상론’인데, 다음과 같이 개탄하고 있다. “우상이라 하는 것은 보고 듣고 말하고 운동함이 없는 죽은 물건이라. 무슨 영험이 있으리오. 슬프다. 세상 사람들의 우상을 숭배함이여, 당장에 살아 있는 부모의 뜻을 순종치 아니하고 근심을 끼치다가 부모가 죽은 후에 그 신주에게 제사 지내며 효도를 다한다 하는 사람들은 재주 있는 장색에게는 절하지 않고 그가 만든 우상에게 절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리요.”
실제로 기독교회는 미신 타파에 앞장섰고, 기독교에 입교한 후에 성황당 같은 미신적 신앙을 타파하고 집안의 복주나 토주, 삼신항아리를 불사르는 일들을 전개했다. 아래의 인용문을 보면 기독교인들이 구체적으로 미신 타파에 기여했음을 알 수 있다.
“철산군수 최씨의 명관 노릇한다 하는 행적은 장황하여 다 기록치 않거니와… 또 해 군 예수교 하는 13세 아해가 여러 아해를 대하여 연설하기를 세상 사람들이 마귀를 믿고 성황당과 령산당에 제사하는 것이 모두 어리석은지라, 성황당 같은 것은 비록 헐지라도 아모 일이 없다 하였더니.” 이는 성황당 같은 미신을 타파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시골의 13세 소년들에게까지 전파되었음을 보여준다.
교회는 참된 신앙과 바른 삶을 살게 하고 우상숭배와 함께 근거 없는 미신도 버려야 할 것을 가르쳤던 것이다. 실제로 기독교인이 된 다음 집안의 보주나 토주 혹은 삼신항아리를 불사르는가 하면 무당이나 판수 풍수지관이 개종한 뒤 이를 버리기도 했다. 그 일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안종찬은) 문수도 잘하고 설경도 유명하며 돈도 잘 벌더니 예수씨의 말씀을 듣고 헛된 무수한 사람을 유혹케 한 죄를 깨닫고 예수씨를 믿어 지금은 새사람이 되어 하는 말이 눈은 판수나 마음은 밝다 하며 이름을 고쳐 빛에 거하였다고 하며 거광(居光)이라 하고 날마다 전도하며.”
기독교가 한국사회에 풍미했던 미신 타파에 앞장섰다는 사실을 불교학자인 이능화도 인정하고 있다. “기독교인은 귀신 섬기는 음사(淫祀)를 폐지하여 전에는 무당이나 점복자를 믿고 듣던 부녀가 지금은 하늘 아버지(天父)를 예배하는 자녀가 되었다. … 이후로는 반드시 과학이 발달하여 사람들이 점점 더 옛 미신을 불신하게 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한국교회가 우상이나 미신 타파를 위해 힘쓴 일은 비합리적인 의식을 계몽하고 건실한 국민정신을 함양하는 일이었다.
<고신대 교수·역사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