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철휘 (11) 고난 속 한줄기 빛 ‘ROTC’… 육군 소위가 되다
입력 2011-12-11 17:29
가난 때문에 더 이상 대학생활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나에게 학군단(ROTC) 모집 광고는 한 줄기 빛과 같았다. 특별히 이번 ROTC 모집은 군 복무를 연장할 의사가 있는 사람에게는 장학금까지 준다는 것이었다. 원래 복무기간은 2년인데 2년을 더 연장하면 연장한 기간만큼인 2년 치의 장학금을 받는 것인데, 그 장학금의 액수가 당시 내 생활비 수준에서는 엄청났다. 그때 나는 학기별 성적에 따라 전액 또는 반액 면제를 받는 장학생이었는데, 그 나머지 등록금을 다 내고도 생활비를 쓸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한 액수였다. 그렇게 대학 3∼4학년은 장학금 때문에 적은 액수나마 용돈도 쓸 수 있는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길을 열어주신 것이라 믿어진다. 왜냐하면 학군단 장학제도가 마침 그때 처음 생기고 그 덕택에 ROTC 장교로 군대에 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군은 나의 운명과도 같다. 나는 운명처럼 군을 만났다. 다른 동료들은 기초 군사훈련이나 야외훈련을 받으면 매우 힘들어했다. 그런데 나는 전혀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먹고 자고 입는 문제가 해결되고 봉급까지 받게 되니까 훈련이 너무나 행복하게 느껴졌다. 지금은 훈련제도가 달라졌지만 우리 때는 여름방학마다 군부대로 가서 4주씩 훈련을 받고 왔다. 동료들은 그 기간을 매우 힘들어했다. 그런데 나는 마치 어렸을 때 전쟁놀이하듯 재미있었다. 나의 어린 시절은 전쟁 직후이니까 친구들과 산을 뛰어다니며 전쟁놀이를 많이 했다. 미군들이 마을을 지나가면 “기브 미 초코레트” 하면서 초콜릿을 받아먹기도 하고 탱크에 올라타 보기도 했다. 그래서 나에게는 군의 모든 것이 낯설지 않았다. 이런 까닭에 어쩌면 그 당시 윗사람이나 동료들이 보았을 때 내가 군이 체질에 맞는 사람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초등군사반(OBC) 교육을 받을 당시 보병 학교장은 월남전에 맹호부대 사단장으로 참전한 정득만 소장이었다. 그분이 월남전에 가보니까 소대장들이 중요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훌륭한 소대장들을 많이 육성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신 분이셨다. 특히 ROTC 장교 중에서 장기 복무자들을 많이 획득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셨다. 왜냐하면 예나 지금이나 전 군의 소대장 절반 이상을 ROTC 출신들이 맡고 있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은 의무복무 2년만 마치고 전역하기 때문에 소대장으로서의 사명의식과 주인정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 소장은 뜨내기가 아닌 주인의식을 가진 소대장을 배출해야 군의 전투력도 올라갈 것이라는 확신 아래 ROTC 장교의 장기복무를 적극 권유하셨다.
어느 날 장학금을 받고 복무기간이 연장된 장교후보생들을 별도로 큰 강당으로 불렀다. 그 당시 교육받는 학생의 입장에서는 깜짝 놀랄 정도로 풍성하게 다과를 준비해 놓은 것이 아닌가. 다과회가 끝날 무렵 장기복무를 할 사람은 이름을 쓰라며 학교장이 직접 권유하셨다. 거기서 많은 동기생들이 감동을 받아 장기복무를 하겠다고 결심했고 그때 나도 장기복무 지원을 했다. 장군이 되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그냥 군대가 좋았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6) 약한 믿음이지만 하나님께서 나의 앞길을 인도하실 것이라는 어렴풋한 기대도 있었다. 꿈에 그리던 야전으로 나갈 순간이 다가왔다.
정리=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