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지 통신-여기는 이슬람권 터키] 유진과 준상을 아세요?
입력 2011-12-09 21:11
[미션라이프] 터키는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나라다. 이스탄불의 보스포로스 해협을 경계로 그 위는 유럽, 그리고 아래는 아시아이다. 보스포로스 해협이 있었기에 흑해가 마르마라해와 에게해를 거쳐 지중해로 연결될 수 있었다. 지리적 특성을 보며 주님께서 왜 복음을 터키를 통해 전파하게 하셨는지를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지리적 환경 때문에 터키는 유럽에 속한 특성도 가지고 있고 아시아의 특성도 가지고 있다. 월드컵 축구가 있을 때는 터키는 유럽조에 속해서 강한 유럽팀들과 경기를 해야 한다. 또한 EU에 가입하기위해 국가적으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지금은 유럽의 상황이 예전 같지는 않지만.
외모나 문화, 주거생활 그리고 세계 4대 요리중의 하나인 터키의 음식문화에서도 동서양을 혼합해 놓은 듯한 많은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외모는 겉으로 보기에는 좀 더 서양인에 가까운 듯 하나 정서적으로는 좀 더 동양적이다.
필자는 사역특성상 서양 사람들과도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가운데 느낀 그들의 특징은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일정한 선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개인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남의 집에 방문하거나 전화할 때 밤늦은 시간을 피하는 것이 상식이고 연락하지 않고 갑자기 방문하는 것도 조심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남들 앞에서는 좀처럼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이 서양인들이다.
하지만 터키인들은 밤늦게 방문하여서도 늦게까지 교제할 수 있다. 일반적 모슬렘 문화가 그렇듯이 터키도 손님을 아주 귀히 접대하는 문화다. 터키인들은 아파트의 발코니를 활용하고 개조하여 그 곳에서 식사를 하고 손님을 초대할 때 사랑방처럼 쓴다. 날씨가 좋을 때면 발코니에서 밤 12시가 넘어서까지 손님을 초대하여 식사를 하고 교제를 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터키 분들에게 초대를 받아 방문하게 되면 네다섯 시간 정도 머무는 것은 보통이다. 그래서 여성들은 만날 때 뜨개질거리를 가지고 만난다. 이야기하면서 각자 열심히 뜨개질을 하곤 한다.
터키인들은 남들 앞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에 솔직하다. 남자끼리도 조금만 관계가 형성되면 쉽게 아비(터키말로 형님)라고 부르는데 주저함이 없다. 남자들끼리도 거리에서 손을 잡고 다니며 남자들끼리 인사할 때도 양볼에 뽀뽀하는 것이 터키의 문화다. 친밀함과 친절함이 미덕이 되는 문화이다. 터키에 와서 길을 물어보면 터키 사람들이 얼마나 친절한 지 금방 깨닫게 된다. 터키에서는 길을 모르면 가야 할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는 것은 흔한 일이다.
이슬람을 전통적으로 믿는 것도 터키사람들의 문화를 유럽인 들과 다르게 만든다. 이들은 성경 중에서 구약의 일부를 믿고 코란의 가르침을 따른다. 따라서 성경과 코란의 가르침이 다른 경우에는 성경이 잘못 되었다고 믿는다. 성경을 터키말로 거룩한 책(쿧살키탑)이라고 표현하지만 그들의 삶에 있어서 성경은 접해서는 안 되는 책인 것이다.
터키사람들은 정이 많은 사람들이기에 처음에 감정적 친밀함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감성적인 한국 사람들이 이성적인 서양 사역자들에 비해 조금 유리한 것은 바로 이러한 유사점 때문이다. 즉 문화적,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어렵지 않다.
그리고, 한 가지 중요한 변화는 한류이다. 벌써 8, 9년 전에 우즈베키스탄에 있을 때의 일이다. 한 우즈베키스탄 아주머니께서 “유진과 준상을 아세요?”라고 내게 물었었다. 그래서 유진이는 내 동생인데 준상은 누구냐고 되물었다. 그랬더니, 겨울연가를 봤냐고 물었다. 그제야 그들이 드라마 주인공인 것을 알게 되었다. 한 시골 아주머니는 아들 이름을 준상으로 지었단다.
이곳 터키도 예외는 아니다. 시내에서 만난 한 터키 모녀는 집에서 김치를 만들어 먹고 있고 한국 드라마를 즐겨 시청한단다. 이런 분들을 자주 만난다. 이슬람 나라 곳곳에서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있는 한류의 힘을 피부로 체감하고 있다.
왜 세계지도에서 동방의 작은, 그것도 반으로 갈라진 한국이 이렇게도 짧은 시간 안에 세계적인 영향력을 주는 나라가 되었을까? 사역자인 우리의 입장에서는 한국선교를 위한 절대적인 하나님의 준비하심과 섭리하심이라고 밖에는 해석할 수가 없다. 실제로 한국인 인 것이 자랑스럽고 사역을 하거나 사람들을 만나는데도 너무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우리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여러 가가지 상황이 어우러져 모슬렘 권에서는 동양권(한국인) 사람들에 애한 호감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하나님께서는 모슬렘 나라들에서 우리가 일할 수 있도록 많은 것들을 예비해 주셨다. 열려져 있을 때, 씨를 뿌릴 수 있을 때, 하나님이 기회를 주셨을 때 우리는 일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아직도 일꾼들을 부르시고 계신다. 이사야 6: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터키 앙카라에서-통신원 김요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