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 자임 조광래… 날치기 문책론 확산

입력 2011-12-09 18:34

날치기 경질 논란 당사자인 조광래 축구대표팀 감독이 조중연 대한축구협회장을 비롯한 협회 수뇌부에 대한 직접적 비판을 자제하고 대표팀을 떠났다. 협회는 이르면 오는 13일 기술위원회를 열어 새 대표팀 감독 후보군을 추릴 예정이다.

9일 서울 역삼동 노보텔 앰배서더 강남 호텔에서 진행된 조 감독 기자회견은 당초 예상보다 비판 수위가 낮았다. 조 회장이 주재한 회의에서 조 감독 경질이 결정된 과정, 황보관 기술위원장이 윗선의 경질 지시를 일방 통보하게 된 상황에 대한 새로운 사실관계 설명이나 강도 높은 비판은 없었다.

조 감독은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는 동안 국민과 축구팬들을 실망시킨 점 사과드린다. 저는 이제 대표팀을 떠나지만 한국 축구의 밀알이 되는 심정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회견 내내 침통한 표정으로 간혹 눈시울을 붉힌 조 감독은 “사랑하는 후배 황보 위원장에게 조언 하나 드리겠다. 황보 위원장이 앞으로는 외부 입김으로부터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기술위를 이끌어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조 감독은 그러나 외부 입김의 실체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는 “구체적으로 얘기하기 어렵다”며 확전을 피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아침 모 라디오 인터뷰에서 축구계 개혁 운동을 진행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서도 “축구의 기술적 개혁을 언급한 것”이라며 피해갔다.

박태하 코치 등 코칭스태프들과 회견장에 나온 조 감독은 “제가 대표팀 감독일 때 조 회장님이 신경 많이 써줬다. 조 회장님과는 지금도 관계가 좋다. 하지만 그래도 한번은 미리 저한테 (경질) 얘기를 할 수 있었던 것 아니냐“고 말했다. 조 감독은 조 회장과 황보 위원장에 대한 인간적 섭섭함 정도만 표현했고, 나머지 회견 시간은 한국 축구의 기술적 문제를 설명하는데 할애했다. 조 감독이 협회와의 대립각을 누그러뜨린 것은 감독 경질이 다시 되돌릴 수 없는 문제이고, 더 이상 논란의 중심에 서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조 감독은 “향후 거취는 아직 특별히 생각한 게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축구계 일각에서 이번 사태를 불러온 관련자들에 대한 문책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최소한 기술위의 독립성을 훼손하며 윗선의 지시를 옮기기만 한 황보 위원장은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협회는 “황보 위원장 문책은 없다. 황보 위원장 체제에서 새 감독을 선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협회는 오는 12일 전임 이회택 기술위원장 사퇴로 공석이 된 새 기술위원들 명단을 발표한다. 13일에는 황보 위원장 주재로 첫 기술위원회를 열어 차기 감독 선임 문제를 논의한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 본선까지 지휘봉을 맡긴다는 전제 조건 없이 아시아 예선만 치르겠다는 감독이 거의 없다는 점이 협회의 고민이다.

이용훈 기자 co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