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행정관 등 연루 은폐… 경찰, 수사권 독립 자격있나
입력 2011-12-09 22:09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디도스(DDoS) 공격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는 허점투성이였다. 범행 배후를 밝혀낼 물증을 확보하지 못한 채 피의자와 참고인 진술에 의존했다. 진술에만 매달리다 보니 “물어봤더니 아니라고 하더라”는 식의 수사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모습도 보여 “이런 경찰에게 수사 주체성을 인정해 줄 수 있겠느냐”는 지적까지 나왔다.
경찰은 9일 수사 결과 발표에서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 비서 공모(27)씨 등 5명의 우발적 범행으로 판단하는 근거로 공씨와 공범 강모(25)씨가 범행 전날인 10월 25일 전까지 1개월 이상 통화하지 않은 점을 들었다. 그러나 이는 공씨와 강씨의 휴대전화와 사무실 전화 정도만 조사한 결과다. 대포폰 등 추적을 피할 수 있는 전화로 모의하거나 직접 만나 이야기했을 가능성이 큰데 이에 대한 수사가 부실했던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10월 25일 밤 박희태 국회의장 비서 김모(30)씨가 불러 룸살롱에 온 공씨는 술자리에서 선관위 홈피 공격을 운운하는 농담이 나왔을 때 퍼뜩 생각이 들어 강씨에게 전화했다. 이어 공씨는 “선관위 홈피를 때리삐까예(때릴까요)?”라고 물었고 김씨는 “절대 하지 마라”고 했다.
이는 모두 공씨와 김씨의 진술이다. 김씨는 최구식 의원 비서 출신으로 공씨를 최 의원에게 소개해줬다. 공씨와 김씨는 줄곧 범행을 부인하다 지난 8일 갑자기 진술을 바꿨다. 경찰은 두 사람이 진술을 바꾸는 것까지 말을 맞췄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고 있다.
공씨와 김씨 모두 윗선 누구에게도 사건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대형 사고를 치고도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공씨의 범행 전날 행적과 관련 있는 인물에 대한 수사는 더욱 의혹을 키운다. 경찰은 공씨가 합류한 2차 술자리(서울 역삼동 룸살롱) 전에 김씨가 서울 종로에서 가졌던 저녁식사 자리 참석자를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 정두언 의원 비서 김모(34)씨와 공성진 전 의원 비서 출신 박모(35)씨는 공개하면서 청와대 행정관 박모(37)씨의 존재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숨겼다.
저녁식사를 하며 김씨 등이 디도스 공격을 논의했을 수도 있는데 경찰은 “참석자 얘기를 들어보니 아니었다고 하더라”는 식으로 일관했다. 황운하 경찰청 수사기획관은 “청와대 행정관 조사는 요식행위로 새로운 내용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수사 의지마저 의심되는 대목이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검찰 송치까지 시간이 부족해 아쉽다”고 했다. 그는 이번 수사를 “검·경 수사권 조정과 연관시키지 않겠다”고 했지만 검·경 신경전과 맞물려 수사 결과에 큰 관심이 쏠린 게 사실이다. 그러나 경찰은 분위기를 반전시킬 결과물을 내놓지 못했다. 검찰은 사건을 넘겨받아 재수사에 가깝게 수사할 방침이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